김자향(시인, 시낭송가)
어머니, 저의 오래된 수첩에는 빛 바랜 주민 등록증 사진 한 장이 끼여 있습니다.
이 세상 다녀가신 흔적들, 또는 아련히 떠오르는 당신을 향한 목멘 중년의 연가가 오늘은 불길처럼 일렁여 저녁놀에 반짝입니다.
된장국 끓이려고 한 종지 간장을 뜨다가 어머니의 다정다감하신 음성을 듣습니다.
"얘야, 간장 맛이 구수한 게 내년에는 네 집일이 만사형통이 되려나 보다."
옹기종기 햇살 쪼이던 장독이 가을 볕 굴러 떨어지는 맑은 웃음소리로 담을 넘던 정이, 어느덧 제가 며느리 맞을 그 자리에 와서야 뜨겁게 그리워집니다.
며칠 지나면 닥쳐올 명절의 차례 상 음식에서 어머니 손맛이 또 한번 생각나는 지금 풍요의 계절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모진 세월의 아픔을 감칠맛 나게 담그시던 어머니의 사랑이 넉넉하게 출렁거려 고단한 삶이지만 저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이승의 삶을 곰 삭여 저승의 영원한 자양이 되게 하세요.
숟가락 싸움질을 하던 자식들도 다 제 짝 찾아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가 싶더니 어머니 서 계시던 그 자리에 든든한 나무로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올해의 성묘엔 흰 머리카락 대신 더욱 무성해졌을 잡초도 시원스럽게 뽑아드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녹색의 자식들 살아가는 이야기도 아뢰고 오겠습니다.
어머니, 오늘따라 어린애가 된 듯 당신 품속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
영원히 사랑합니다. 어머니!
/김자향(시인, 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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