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소장)
지난 11월 초, 미국 국무부의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이 워싱턴과 볼티모어, 애나폴리스의 세 도시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주제는 <여성과 정치 리더십 만들기> 였는데 주제에 걸맞는 인물들과의 만남, 기관방문을 통해서 미국내 여성정치의 현황과 실정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여성정치참여 비율은 16%로서 세계 평균인 15%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민주주의의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여성정치 참여율이 너무 낮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여성참여가 이렇게 낮은 이유로 성차별을 들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이나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것과 같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율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비례대표제를 시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향후에도 그것을 실시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여성들은 첫 번째 공직 진출의 연령이 높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무언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메릴랜드의 주도인 애나폴리스에서 만난 4명의 여성 하원의원들은 모두 40대의 늦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 그들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간호사, 교사, NGO 활동가들이었고, 그들 분야에서 필요한 효과적인 정책의 입안을 위해서 정치를 시작했다.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만난 여성 하원의원은 보험모집인이라는 전직을 갖고 있었다. 시에서 집 뒤뜰에 송유관을 묻겠다고 한 일에 대해 싸우다가 결국 시의원으로 출마했고 시장을 거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의원이란 거창한 특권계층이 아니라 사회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가 필요할 때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자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펀드 레이징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꼽았는데 기부를 할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해주었다. 특히 민주당 여성후보를 위해 만들어진 에밀리스 리스트(Emily's List) 같은 기금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고, 기금이 여성들의 정치활동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메릴랜드 주에서는 여성 지도자, 여성의원들이 함께 하는 이른바 여성위원회를 구성해서 여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여성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정당을 초월해서 힘을 합한다는 의미도 물론 컸지만 무엇보다 이 위원회는 여성 상호간에 출마에 대해서 서로 격려하고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여성들간의 강한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연대가 의원이 되고 또 의원으로서 활동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성들은 흔히 대중 앞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항상 안정적으로 누군가의 뒤에 숨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기금을 모으기 위한 부지런함,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오랜 활동경력이 필요하다는데 그들은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불편함이나 부당함을 참거나 견디지 않고 개선하려는 적극성으로부터 참여의 동인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4선, 5선의 의원으로서 유권자들에게 심어준, 여성은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고, 성실하며, 여성의원이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또 다른 여성이 의원에 도전하고자 할 때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전정희(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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