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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물건적재등 위험천만

인명보호를 위하여 건축물마다 시설된 ‘비상구’가 비상구의 역할과 용도로 쓰여 지지 못하고, 건축법규정에 맞지 않고 장애물 방치 등 폐쇄된 곳이 문제가 되고 있다.이런 안일한 사고방식으로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을 여러차례 겪고 피해를 보면서도 화재현장 또는 건물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비상구에 대한 건물 관계자의 인식은 여전히 안전불감증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지경이다. 비상구는 생명의 통로임에도 장애물 방치 또는 폐쇄는 살인,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는데 설마 괜찮겠지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지금까지 비상구 폐쇄, 물건 적치 등의 장애로 인한 인명피해 사례는 새삼스럽게 다시 열거하지 않더라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대부분의 건축물 관계자는 한결같이 불편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비상통로에 물건을 적재한다든가, 또는 도난방지 등의 구실로 시건, 폐쇄하는 예가 적지 않다. 작은 화재사고임에도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독가스 등의 원인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것은 비상구가 제 용도로 쓰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앞으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건물 관계자의 책임관리와 의식전환은 물론 국민 스스로도 비상구 등에 장애물 방치나 폐쇄 등 시설 미비 건물에는 출입을 하지 않는 등 우리 모두의 의식 전환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안전에 대한 사각지대가 없도록 철저한 “유비무환”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다.한 가정 한 차량 한 점포에 한 개의 소화기를 반드시 비치하여 우리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자./고경진(전북일보 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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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8 23:02

[오목대] 몽골 이해

인구 247만명, 인구증가율 1.4%, 인구밀도 1.52명/㎢, 평균수명 65.2세(남62.9세, 여 67.6세), 인구구성 0∼14세(38%), 15∼64세(58%), 65세이상(4%), 할흐몽골족(79%), 카자흐족(5.9%), 중국계(2%)등 17개 부족으로 구성된 종족, 할흐몽골(Khalkh Mongolia)어 사용, 라마불교(90%이상), 이슬람교(5%)의 종교에 90년 이후 개신교 및 카톨릭 등이 전파된 나라 몽골. 러시아에 편입된 브리야트계는 현재 바이칼 호수 부근에 거주하는데 이들이 러시아에 편입된 것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서이다.우리와 같은 얼굴 생김새와 체구 그리고 알타이어족이라는 공통점까지 있어서 몽골은 친숙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아직 우리와 격차가 커서 이들에게 우리는 ‘무지개 나라’로 불릴 정도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몽골인들이 적지 않다. 국내 체류 몽골인은 모두 2만700여명 정도인데 그중 1만500여명은 합법 체류자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서울 동대문 운동장역 인근 중구 광화동 뉴금호타운 빌딩 주변은 몽골 음식점과 술집 등이 있어 ‘몽골타운’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이들 몽골인들이 본국에 보낼 돈을 송금해 주는 몽골은행들이 있기도 하다. 이들 은행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불법체류 몽골인들이 시중 은행을 이용해서 본국으로 송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지만 최인호씨의 소설 ‘깊고 푸른 밤’의 주된 줄거리가 미국 사회에 불법체류한 우리 한국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들 몽골인들의 애환 역시 이해 못할 바 아니다.7, 8월 여름에는 몽골로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업 때문에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여행도 단순한 관광 목적에서부터 종교적인 목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국제협력단(KOICA)등 자원봉사들 목적으로 몽골을 방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부시 미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고 ‘밀레니엄 챌린지 계획’에 몽골을 포함시켜 매년 3억 달러 수준의 원조와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등의 움직임은 우리의 몽골방문과 그 성격이 다르다. 앞으로 몽골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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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8 23:02

[열린마당] 전북은 전남을 따라하지 않는다 - 이상휘

흔히들 선거에 있어서 전북은 전남을 따라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전북인은 독자적 판단에 근거하여 합리적 투표를 한다. 그러면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그것은 김대중씨가 이끈 평민당 이후 전남과 전북이 유사한 투표행태를 보이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대통령이 이끌었던 평민당이나 국민회의 혹은 새천년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보면 전남과 전북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제 14대 총선에서 전남과 광주는 민주당 후보 전원을 당선시켰지만 전북은 민자당 후보를 2명이나 뽑아 주었다. 15대 때에도 전남과 광주는 국민회의 후보를 전원 당선시켰지만 전북에서는 신한국당 후보를 1명 당선시켰다. 물론 크게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정당에 몰표를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각인된 인식과는 달리 전북이 독자적인 투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도 여실이 증명되었다. 전남의 민주당 바람이 전북에 북상해 전북도 민주당이 승리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선거기간동안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그러나 전북에는 민주당 바람이 크게 불지 않았다. 그런 데에도 왜 사람들은 전북이 전남을 따라 한다고 말할까? 그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현과 더불어 전남과 전북이 투표에서 거의 동일한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전북이 전남을 따라한다고 할까? 그것은 전남이 전북보다는 도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호남이나 전라도라고 하는 한 묶음으로 보는 선입견에다 전남이 전북 보다는 도세가 크기 때문에 같은 행태가 나오면 작은 힘은 큰힘을 따라하는 것으로 보려는 통념이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출신지가 전남이기 때문에 전북은 어쩐지 주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김대중씨는 전남인과 마찬가지로 전북인에게도 동향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동안 쌓인 설움과 하대를 벗게 해줄 희망으로 김대중씨에게 기대를 걸었었다. 김대중씨는 전남만의 영웅이 아니고 전북인에게도 똑같이 영웅이면서 희망이었다. 따라서 전북인이 전남인과 유사한 투표행태를 보였던 것은 전남을 따라 해서가 아니라 사모하는 대상이 같았기 때문이다. 즉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지방선거를 놓고 ‘전북은 외로운 섬이 되었다’는 말이 있는가하면 선거기간이 1주일만 더 연장되었다면 도지사와 전주시장의 자리가 민주당 후보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들도 있다. 가상의 일이라 가타부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흔히들 간과하고 있는 것이 전북인은 전국적 흐름을 지켜보면서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투표한다는 사실이다. 전북에서 선거 초반 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당이 약진한 것은 전남과 광주로부터 민주당 바람이 불어서가 아니라 전국적 바람이 전북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열린 우리당은 전국 어디에서나 푸대접을 받았다. 이번 지방선거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의 중간 평가의 장이 되면서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북인들 동요가 없었겠는가? 전북에서 민주당이 선거 막판에 기세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열린 우리당에 대한 전국적 응징의 바람이 불어 닥친 탓으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북인은 투표시 전국적 흐름을 감안하면서 인물을 중시해 투표한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득세할 때에도 유진산과 이철승이 이끈 신민당을 지지해 주었다. 17대 총선에서도 전북 정치인이 주도한 열린 우리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전북인은 독자적 판단에 따라 합리적인 투표를 해왔다. /이상휘(지역발전연구소장, 전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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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8 23:02

산림기본법 시행과 사유림 매수정책

우리나라 산림법은 1961년에 제정된 이후 제1?2차 치산녹화계획 및 제3차 산지자원화계획 등을 추진해 오면서 세계가 인정하는 산림녹화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산림법은 산림의 보호?육성을 위한 규제 위주의 법률로서 시대 상황에 걸맞는 산림의 자원화, 임업의 산업화,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한 정책 추진에는 한계가 있어 1996년부터 산림법의 분법(分法)화를 추진하면서 그동안 산지관리법, 임업및산촌진흥촉진에관한법률, 수목원조성및진흥에관한법률을 제정하였고, 2001년에 제정된 산림기본법을 중심으로 하는 기능별 법률체계 정비계획에 따라 마련된 산림자원의조성및관리에관한법률, 국유림의경영및관리에관한법률, 산림문화?휴양에관한법률이 국회 의결을 거쳐 2005. 8. 4.공포되어 2006. 8. 5. 시행됨으로써 10여년에 걸친 산림법의 분법화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산림녹화를 위한 규제 위주의 산림법 체계가 40여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산림기본법을 중심으로 하는 12개의 기능별 법률체계가 완료되어 산림행정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큰 틀이 마련됨으로써 우리나라 임정사(林政史)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산림법 체계에서의 국유림(불요존국유림) 대부(임대)는 산림법에서 정한 용도 이외로는 대부를 받을 수 없었으나 국가 산림경영 목적에 꼭 필요한 국유림이 아닐 경우에는 대부용도 제한을 폐지하였고, 대부를 받을 경우라도 산지관리법 규정에 의한 산지전용허가를 받도록 하던 것을 폐지하는 등 국토의 효율적 이용 및 지역사회 발전 등 국민 편익을 위한 방향으로 국유림 대부제도를 개선하였다. 이제 무주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는 50,000여 ha에 달하는 국유림(산림청 소관)도 앞으로는「국유림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의 경제발전과 국민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을 고려한 국가 전체의 이익 도모,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통한 임산물의 안정적 공급, 자연친화적 국유림 육성을 통한 산림의 공익기능 증진, 국유림의 국민이용 증진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공·사유림 경영의 선도적 역할 수행을 기본원칙으로 하여 경영?관리하게 된다. 또한, 국부(國富)로서의 산림자원의 증축은 물론 국민 휴양 수요 등 산림의 생태적 공익적 기능 증진을 기하기 위하여 관리 여력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사유림을 대대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따라서 대면적 산림 소유자를 비롯하여 산(임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투자비 등의 문제로 방치하고 있는 산주들은 무주국유림관리소(063-324-2394)에 문의하면 자세히 알려주므로 국가 사유림 매수 정책에 적극 호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때마침 산림법 시대를 마감하고 산림기본법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난 2002년을 세계 산의 해로 선언하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해 줄 산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전 인류의 과제다」라고 한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의 말이 새삼 귀에 와 닿는다./서용기(무주국유림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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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8 23:02

[나의 이력서] 덕성여자대학교 이사장 이종훈 - 결혼과 경제적 빈곤

자유당의 부정부패정치가 극에 달한지라 4.19는 이미 예고된 학생민주혁명이었으며, 그 희생 또한 엄청났다. 전교생이 데모에 가담했기 때문에 당시 조교였던 나는 최호진 학장님의 지시에 따라 같이 가게 되었다. 그러나 경찰이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오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때마침 무차별 사격이 시작되었다. 다른 대학보다 많은 학생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고, 엄청난 혼란과 살상을 자행하는 독재정치에 대해 분노했다. 그런데 그 꽃잎처럼 쓰러져간 대학생들의 값진 희생에 의해 이룩한 민주정치가 제대로 꽃피우기도 전에 무질서와 혼란이라는 구실로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학생들이 피로 일궈놓은 민주혁명의 뜻이 좌절되고 헌정이 중단된 것은 역사의 후퇴였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가치관과 법치주의가 파괴되는 후유증을 가져왔다.이러한 시대적 변혁과 혼란을 나는 짐작도 못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의 현실에 대한 무능함을 통감하면서 점차 정치문제와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편 화려한 혁명공약이 정권창출의 구실이 되어가고 군사통치가 강화되면서 나는 군대문제(당시 면제였지만)로 무조건 대학에서 밀려나게 되어 대학원학생으로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다.점차 살기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경제의 사정은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대가족의 생활비와 교육비문제로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고생이 심해지셨으나, 공부한다는 핑계로 전혀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신세였다. 다행히 한국경제연구소가 처음으로 생겨 연구원으로 취직했고, 겨우 대학원을 마칠 수 있었다.그러나 나는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군대를 필하지 않으면 대학강사도 할 수 없는 때라, 그저 따분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일찍이 꿈꾸었던 외국유학도 군대문제 때문에 불가능해져서 현실도피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겨우 연명하는 정도였다. 희망도 없고 뚜렷한 직업도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리 없었으나, 조부모님의 성화도 있고 해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결혼할 자신이 없었으나 때 마침 친척 교수분(이화여대 이영로 교수)과 선배교수(중앙대 박찬계 교수)가 동시에 현재의 아내(陸完貞 당시 이대강사, 현재 단국대명예교수)를 소개하여 서로 믿고 결혼하게 되었다.아내도 대학에 몸담은 교육자 집안(陸敏哲, 초대 전주여고 교장) 출신으로서 고향도 비슷하여(전주) 쉽게 가까워졌고, 무엇보다도 학문한다는 동업의식으로 어려운 결혼생활을 극복할 수 있었다. 60년대 후반의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빈곤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나 같은 시골출신이 뚜렷한 직업도 없이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고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결혼생활 속에서도 아들(碩浩, 미국 택사스주립대 강사)과 딸(周殷, 연세대학교 강사)이 태어나 가정에 대한 따뜻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손쉽게 생각했던 교수가 되기도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장래에 대한 불안이 쌓여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꿈꾸어오던 유학이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돌파구를 유학에서 찾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아들딸을 거느린 가장이 유학을 떠난다는 것도 쉽지 않아 새로운 고민과 갈등에 싸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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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7 23:02

우석대, 日대학생 초청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

“인접 국가인데도 일본과는 사뭇 다른 전통 문화와 생활양식을 접하면서 매일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우석대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본 무사시노 가꾸인대학의 나카지마양은 6일 “한국의 문화와 역사는 알아갈수록 새롭게 다가온다”고 소감을 밝혔다.우석대는 지난 2004년 교류협약을 체결한 일본 사이타마현 소재 무사시노 가꾸인대학 재학생 9명(남 2명·여 7명)을 초청, 2일부터 11일까지 9박10일 일정으로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측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한국어 강습과 함께 전통무용·사물놀이 시연 등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또 전주 한옥마을과 한옥생활체험관·술박물관·전통문화센터·한방문화센터 등을 방문, 일본 대학생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특히 지난 6일에는 문화체험 기간중 21번째 생일을 맞은 오카다양을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마련, 우정을 나눴다. 일본 학생들은 지리산과 임실 등 전북권 투어에 이어 9일 문화체험 수료식을 갖고, 춘천 남이섬과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경복궁·서울 청계천·남대문 등을 둘러보고 11일 출국할 예정이다. 우석대와 일본 무사시노 가꾸인대학은 교류협약 체결 이후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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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06.08.07 23:02

50년 궁도 인생 '매서운 활시위'

“삼복더위 넘기는 데는 궁도가 최고여, 최고.”부안 심고정서 열리고 있는 ‘제2회 불멸의 이순신 전국남녀 궁도대회’에 참가한 도내 최고령자인 유도수씨(82)는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조차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하는 무더위속에도 불구, 한 치의 흔들림없이 힘차게 활 시위를 당긴다.쏘는 순간 숨을 죽인채 매섭게 과녁을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서 팔순 노인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하지만 그는 입상을 위해 대회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궁도 그 자체를 즐기는 매니어다.워낙 활 쏘는 것을 좋아해 50년동안 궁도를 즐겨와 전국 궁도인들 사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지난 90년대 중반에는 전북궁도협회장을 지내며 전국 무대에서 전북궁도가 메달을 휩쓰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는 “궁도를 하면 맨 먼저 몸에 예절을 배우게 되고 둘째로 정신이 맑아지면서 전신이 가벼워진다”고 강조한다.궁도 자체가 단전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호흡과 내장운동이 활발해지는 부수 효과도 크다는게 그의 설명.과녁의 크기는 가로 2m, 세로 2m60cm로 커 보이지만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는 145m나 된다.때문에 일반인들은 맞추기는 커녕, 과녁까지 나가는 것도 벅차지만 유 옹은 지금도 15발을 쏘면 8, 9발정도는 척척 맞출 만큼 노익장을 자랑한다.다가산 아래 전주 천양정서 매일 40∼50발씩 활 시위를 당기며 이열치열식 건강관리를 한다는 그는 “올 여름이 그렇게 더운가”라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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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06.08.07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트란지스터 라디오 발명

《8월 7일》①1부 1처 제도 확립우리나라에서 법률적으로 첩의 제도가 없어진 것은 1915년의 오늘이었다. 그 법률적 근거는 이날 공포된 법령 24조에 의해서였다. 이리하여 법률적으로는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것이다. 이어 1923년 7월 1일에는 다시 사실혼주의로 전환하여 혼인제도가 근대화 됐다.②인도 시인 타골 타계인도의 타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이며 사상가이다. 17세 때 유럽에 유학하면서 시작에 열중, 1912년에는 서정시의 걸작 ‘기이단쟈리’를 출판, 크게 호평을 받았다. 그는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한 시도 남겼다. 1913년 노벨상을 받은 그는 1941년 오늘 서거했다.③당초에 미국서 발명1955년 오늘, 일본 동경통신공업(소니)은 미국의 웨스턴 엘렉트리크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세계 최초의 트랜디스터 라디오 개발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트랜디스터의 발명자는 미국의 쇼크레, 브라탄, 비딘 등 3인으로 이들은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④그리이스 연합군 대패기원전 338년의 오늘, 마케드니아 군의 계략에 걸려 무모한 진격만을 거듭하던 그리이스 연합군부대는 배후로부터 급습해온 적에 의해 괴멸적인 큰 타격을 입었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카이로 네이나의 대전”이다. ⑤해괴한 동창회장 선거1927년 오늘, 순창초등교 동창회에서는 회장선출문제로 큰 소동. 당시 일인 교장(福島仲雄)은 자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졸업생들은 회원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장이 당선됐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를 사설로 비판하려 했으나 압수당하고 말았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8.07 23:02

무주 공무원·사회단체·군민 평창 수해복구나서

무주군을 비롯한 무주의 각종 사회단체, 군민들이 강원도 평창군의 수해복구 지원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군은 지난 5일부터 이틀동안 홍낙표 무주군수를 비롯한 이해연 군의회 의장 , 군민, 공무원, 무주군의회의원 등 350여명으로 수해복구 자원봉사단을 구성하고 집중호우 피해로 실의에 빠진 지역 주민들과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진부면 일원에서 농수로 복구 및 폭우로 쓸려 내려온 각종 쓰레기와 목재 치우기 등 피해복구 지원활동을 펼쳤다. 이번 평창군 방문은 지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경합을 벌였던 지역으로 무주군민들에게는 기억을 저버리지 못할 아픔이 있음에도 이를 뒤로한 채 수해복구 활동에 구술땀을 흘렸다. 홍낙표 무주군수는 “2014년 동계올림픽 실사를 앞두고 수해를 입은 평창군에 위로를 보낸다”며 빠른 복구로 기필코 대한민국에서 개최할 수 있기를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진부면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이런 비 피해가 난생 처음이었지만 무주군민들이 도와주러 오신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며 “이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희망을 갖고 다시 새출발하겠다”고 고마워했다. 특히 이번 자원봉사길에는 강한전북일등도민운동 무주군협의회(회장 오세득)에서 생수1500병, 라면 120박스, 백미 40포를, 무주군 어린이집 연합회에서 백미 30포 등 5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전달했다.

  • 지역일반
  • 임성규
  • 2006.08.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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