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숙 칼럼] 스승의 날을 맞으며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 자리에 앉은 젊은 연인들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적이 있다. DMB로 열심히 TV 방송을 시청하던 이들의 대화는 “요즘 세상에 진정한 스승은 없어, 그지?”에서 “맞아, 맞아. 요즘 세상에 스승이 어디 있어?”라며 버스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진행되고 있었으니 그들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내 귀가 쫑긋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진정한 스승이 있었대. 우리 아버지 친구 분 중 한 분은 너무 가난해서 대학 입학금을 댈 수 없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본인 몰래 도와 주셨고 그 분이 나중에 크게 되셨대. 그런데 요즘에 그런 선생님이 어디 있어? 없지.” “그러게, 요즘 세상엔 그런 선생님은 없지.”라던 이들의 대화는 곧 다른 토픽으로 옮겨갔다.어쩔 수 없이 듣게 된 대화이고 이들의 대화 내용에 공감하지도 않았지만, 한 순간 참으로 민망하고 씁쓸할 뿐 아니라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진정한 스승이라고 불릴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이 계실 진대 ‘무엇이 이 젊은이들이 이런 내용의 대화를 사람이 가득한 버스 안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큰 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일 텐데 우리 교육에서 사제지간의 불신의 골이 이다지도 깊은 것일까? 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사가 많은 5월이 돌아왔다. 초중고교는 스승의 날 학부모들의 과도한 치맛바람과 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날 하루 휴교를 한다고 한다. 휴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대학에서는 당연히 수업이 진행되는데, 이 날 즈음하여 수업에 들어가면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라는 노래가 시작되며 과대표가 나와서 분홍색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그리고는 ”휴강해요! “라는 외침이 우렁차게 강의실에 울려 퍼진다. 저학년 강의실에서는 초코파이 위에 촛불을 올린 애교스런 미니 케이크와 폭죽이 곁가지로 등장하기도 하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심드렁하게 노래를 불러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무표정하게 있어야 하는 건지, 곤란하게 하던 고학년 강의실도 있었다. 당황하고, 민망해하고, 감격하면서 가르치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은사님들께 받은 과분한 사랑을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내 자신을 돌이켜 본다. 올해도 예년처럼 몇 통의 문자메시지와 몇 통의 전화, 한 송이 분홍 카네이션과 함께 스승의 날이 저물 것 같다. 요즘 학생들처럼 ’선생님,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크나큰 가르침으로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큰 힘과 위안이 되어 주셨던 나의 스승님들께 올해는 꼭 의례적인 선물이 아닌 마음의 편지를 써 보내야겠다./유효숙(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