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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좋은 선생님 - 장학웅

어느덧 가로수의 붉고 노란 단풍이 낙엽으로 떨어지는 초겨울이다. 세모를 앞두고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마감하기에 앞서 일선 교육현장에서 부닥치는 고민들을 차분하고 조금은 여유 있게 생각해 본다.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다.’라는 말이라든지, 작금의 사제간의 불협화음의 보도 내용들을 듣노라면, 우선 우리 교사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교육의 주체자로서 몸과 마음이 미성숙한 학생들을 국가와 사회와 학부모들이 원하는 인재로 양성해야 한다는 바쁜 마음이 혹 우리의 초심을 흔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작고 소박한 학생들의 마음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학교가 학교인 것은 누가 뭐래도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격양성에 있다.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적응할 생산적인 인재강국은 우선 교사의 효율적인 교과학습지도와 학교 학급의 행정관리, 생활지도와 상담지도가 당연히 절실히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교사의 따뜻한 마음과 진솔한 매력이 더해질 때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유념해야 할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마음이 따뜻하고 진솔한 교사이다. 항상 미소와 칭찬으로 격려해 주고, 학생들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선생님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안다면 학교생활이 즐겁고 충실해질 것이다. 둘째,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서로 화합하려는 교사이다. 교사의 일방적인 생각만 강요하지 말고 서로 다른 재능, 취미, 가치관과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항상 변한다. 올바르고 창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셋째, 화기애애한 학습 분위기조성과 풍부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교사이다. 힘든 학교생활에서 교사의 능숙한 유머는 우리 학생들에게 하루의 피로를 덜게 하고 학습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즐거운 에너지를 창출해낼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참교육 지덕체를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것이다. 넷째, 교수기법을 연구 개발하여 실력향상에 앞장서는 교사이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교과에 맞는 새로운 교수기법을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자세로 학습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기다림과 믿음의 철학을 아는 교사이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하지 않는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사랑의 씨를 뿌리고 그 씨가 눈을 떠 울창한 수목이 되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제2세 학동들에게 하나를 주고 둘을 모른다 하며 무리한 채근을 해서는 안 된다. 곁에서 사랑으로 지켜주며 믿어줄 때, 우리는 저 철없고 무모한 어린 제자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난 이 시간에도 나의 묘목 같은 제자들이 큰 나무로 자라기를 소망하고 있다. 끝./장학웅(전주아중중 교감·시인)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12.28 23:02

[오목대] 행복하시길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이 질문에 선뜻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살벌한 전쟁터가 되어버린 생존경쟁, 그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에게 행복은 먼 나라의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하지만 삶이 힘들수록 행복의 가능성은 높아지는 법. 수필가 김소운은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세가지 예화를 들려준다. 그 중 가난한 신혼부부 얘기. 쌀이 없어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실직한 남편은 어렵게 쌀을 구해 점심상을 준비한다. 따뜻한 밥 한그릇에 찬으로 간장 한 종지를 마련한 남편은 초라한 밥상을 대할 아내를 생각하며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쪽지를 남긴다. 남편의 마음이 담긴 쪽지를 보고 아내는 왕후가 된 것보다 더 가슴 뿌듯한 행복감에 눈물이 핑 돈다. 어렵고 가난한 시절, 소박한 부부애가 따뜻하게 전해온다.영국 신경제학재단(NEF)이 발표하는 나라별 국민의 행복지수(HPI)도 결코 경제력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태평양 서남부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의 국민행복도(우리나라는 102위)가 가장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누아투의 경제규모는 세계 233개국 중 203위다. 그렇다고 가난이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5월 한국인 160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고학력·고소득층의 행복지수가 그렇지 못한 계층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많이 배우고 돈이 많을수록 △돈보다 가족을 중시하고 △타인과 사회를 신뢰할수록 △신앙이 깊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라는 게 결론이다.또 통계청은 지난 9월 국민행복을 위한 ‘5대 행복테크’를 발표했다. 부자가 되려면 재테크를 잘 해야 하듯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행복테크에 익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부 가사분담 △가족과의 시간확보 △자기계발 △대화의 장 마련 △기부·봉사의 생활화 등을 꼽았다.결국 행복은 자기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 ‘happiness’는 본시 옳은 일이 자신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happen’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 운동을 해야 근육이 붙듯 행복도 노력해야 얻어지는게 아닐까.지나간 한 해, 그리고 새롭게 맞이할 쥐의 해(戊子年),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12.28 23:02

[열린마당] 신문보도 생명은 중립ㆍ객관성 - 유명량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 대부분은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확실히 서울은 천정부지로 치달아 온 부동산 가격 때문인지 대다수 공산품이나 음식 등 소비자 물가가 아주 비싼 편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고물가 도시’ 서울에서 비교적 값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하나 들어보라면 바로 한 달 구독료가 1만 2천원에 불과한 ‘신문’을 꼽고 싶다. 매일 새벽 6시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신문은 어김없이 바로 문 앞에 놓여 있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엄동설한에도 문밖에 나갈 필요 없이 손만 뻗으면 신문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아파트 주거 시스템의 차이로 인하여 신문 배달원이 직접 문 앞까지 배달할 수 없어 아파트 1층 현관이나 우편함까지만 배달해주기 때문에 1층까지 내려가서 가져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문 밖을 나설 땐 잠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손을 본 후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경우에는 신문이 제때에 배달되지 않아서 옷을 갈아입고 1층에 가보면 우편함이 비어 있는 경우도 있다.지난 93년부터 97년까지 필자가 미국 시카고에 거주할 당시, 단독주택에 거주하였는데, 신문 배달원은 매일 신문을 집 앞 정원 잔디에 던져 놓았다. 당시는 미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으며, 전날 밤 TV중계를 본 후 가장 기대되는 것은 다음 날 이에 대한 신문의 논평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곤혹스러웠던 것은 시카고의 날씨가 일년중 거의 6개월이 겨울 날씨인탓에 아침에 마당에 가서 신문을 가져오기 전에 반드시 두터운 신발과 양말, 외투, 모자와 장갑을 신은 후, 영하 20도의 눈 속에서 보물 찾듯이 신문을 끄집어내 실내에 돌아와서 다시 온 몸에 걸친 옷가지를 다시 벗고 난 후에야 신문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볼 때 한국에서 아침에 아주 편하게 - 그것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 신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낄 수 있다.하지만 필자가 매일 한국 신문을 보는 진정한 이유는 매일 아침 눈앞까지 신문을 배달해주는 것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신문들이 갖고 있는 풍부하면서도 읽을만한 기사거리, 또 높은 수준의 보도 때문이다. 특히 발행부수에서 선두 그룹인 중앙지(中央紙) 또는 지방지(地方紙), 심지어 영자신문까지도 모두 내용이 아주 알차고 풍부하고, 사건평론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학자, 전문가를 초빙하여 문제의 핵심을 심도 있고 상세하게 분석한 후 전문적인 견해를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 세계의 인쇄 매체들은 모두 인터넷의 영향으로 발행부수가 대폭 감소하였지만, 한국의 언론사들은 그다지 큰 타격은 없는 것같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구독의 편리함 이외에 신문 보도내용의 수준이 여전히 아주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매일 아침 신문 보기를 기대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편,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언론자유가 크게 신장되고 인터넷이 발달하게되면서 언론매체간 악의적인 경쟁이라는 ‘부산물’도 생겨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적잖은 언론사들이 때로는 사려 깊은 보도나 논평이 결여된 과장되고 선정적인 보도방식으로 일반 독자들의 구미에 영합하고, 심지어는 언론자유를 남용하여 개인의 사생활 문제 등 중요한 내용마저 폭로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저급한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또 매체간 출혈경쟁이 지나치다보니 많은 언론사들이 문을 닫는 일도 속출했다. 또, 운 좋게 살아난 언론사들도 발행부수의 급속한 감소뿐만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마저 상실한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신문들에 친숙한 필자 입장에서는 무척 마음이 아프다. 한국의 신문 종사자들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격조 높은 수준의 신문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얼마 전 소위 ‘변양균-신정아’「스캔들」에 대한 보도는 필요 이상으로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내용도 상당 부분이 추측성 위주여서 마치 일반 대중의 구미에 영합하여 보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 사실이다. 한국 신문의 애독자중 한 사람으로서 매체들이 늘 중립성과 객관성의 양대 가치를 소중히 생각해 ‘경계선’을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유명량(주한대만대표부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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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2.28 23:02

[명상칼럼] 콰이강, 그 무상을 바라보며 - 회일

며칠 전 태국 칸자나부리에있는 콰이강의 다리에 다녀왔다.‘콰이강의 다리’하면 명장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57년에 제작한 동명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고, 영화주제곡인 ‘콰이강의 행진’은 그 경쾌한 멜로디 때문에 세대를 넘어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차 대전 당시 미얀마 양곤과 태국 방콕을 잇는 철도건설에 있어 콰이강의 다리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1년부터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태국을 점령해갔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연합군의 반격으로 해상보급로가 위협받기시작하자 육로를 통한 보급품 공급 작전을 구상하였고 그래서 콰이강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건설하게 된다. 철도 건설에는 연합군포로가 동원되었다. 열대 밀림의 무덥고 습한 기후, 말라리아와 콜레라의 창궐 그리고 극도의 굶주림, 이런 환경에서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연합군 포로는 여기서만 2만여 명이 희생됐다.그 지옥 한가운데 우리민족의 희생도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포로의 노역을 관리하기위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조선전역에서 색출한 2700여명을 동남아 전선으로 보냈다. 조선인 군속들은 일본군으로부터는 식민지 신민으로서의 학대를, 연합군포로로부터는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했다. 전후 전범재판에서 일본군포로들은 일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속속 감형되어 가석방되었으나 조선인은 연합군측으로부터는 일본군군속으로, 일본군측으로부터는 제삼국 또는 무국적자로 취급되어 고통 속에 한 많은 인생을 마쳐야했다.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원혼이 깃든 그 다리위에는 이제 관광객들만 한가로이 오가고 있다.무상(無常)을 관(觀)해야 한다. 욕망과 어리석음이 만든 생각에 붙잡히면 거기에 지옥이 있다. 대립과 갈등의 이 모든 불행한 역사는 집단이기적 욕망과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좁은 우리나라 땅은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평화로운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무상함을 보지 못한 채 세계는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아무리 시비와 다툼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낱 허상일 뿐이다. 콰이강 다리밑에 강물이 그 참혹했던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생각을 놓고 살기를, 새해를 맞으며 기대해본다./회일(참좋은 우리절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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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2.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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