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五話] 김지하 담시 ‘5적’으로 큰 파문
《6월 2일》①미국의 교육가 죤두이 사망“어린이 교육은 과거의 가치 전달이 아니고, 미래의 새로운 가치 창조에 있다”는 말을 남긴 죤 듀이는 미국의 교육자이며 철학자이다. 1952년 오늘, 세상을 떠난 그는 어린이의 개성 존중을 주장했으며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저서가 있다. ②김지하의 ‘5적’ 소동박정희 정권의 독재 부패상을 폭로한 김지하(金芝河)의 담시 ‘오적’이 월간 사상계에 발표된데 이어 신민당 당보 ‘민주전선’에 게재되자 1970년 6월 2일, 당국에서 10만부를 압수하는 소동을 벌였었다. 또한 이해 일본의 ‘주간 아사히’에 게재되자 5만부를 증쇄했다고도.③양키즈의 명 타자 요절미 프로야구의 명 구단 뉴욕 양키즈의 일루수 루 게리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41년의 오늘로, 39세란 젊은 나이였다. 그는 베이브 루스와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명 타자였는데 17년간의 선수생활을 통해 통산타율은 0,341에 홈런 494개였다. 또 15년간에 2130의 연속출장의 기록도.④서베이어 1호 달 착륙미국이 발사한 달 탐사 로케트 서베이어 1호가 1966년 오늘, 무사히 달에 연착륙했다. 선명한 달 표면의 사진 약 1만여 매를 보내왔다. 그중 ‘달세계의 일몰’ 광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이로부터 2주간이나 영하 150도의 추운 밤이 계속된다. 이것을 보면 인류는 둘도 없는 지구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⑤단종 복위 모의 발각세조에게 임금 자리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위해 비밀리에 동지들과 활동하던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 여섯 선비가 붙잡힌 것은 1456년의 오늘이었다. 이들은 세조의 어떠한 회유에도 굽히지 않고 마침내 6월 8일 죽음을 당했다. 이들을 ‘사육신’이라 한다.《6월 3일》①이승만 박사 ‘정읍발언’1946년 5월 하순, 호남지방을 순회하면서 연설을 하던 독립촉성 국민회의 총재 이승만 박사는 6월 3일에는 정읍에서 연설을 했다. 이날 이 박사는 “우리가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뜻대로 안되니 우선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이 박사의 ‘정읍발언’이다.②한·일 회담 반대 「6·3」사태1963년 3월 한일회담이 타결, 5월에 조인원칙이 확인되자, 대일 굴욕 외교절대반대 데모가 날로 격화됐다. 야당을 비롯, 학원가는 매일같이 데모를 했다. 특히 6월 3일, 1만여 명의 학생데모대는 일부 파출소를 점거 파괴, 박 대통령 하야 요구를 요구하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이것이 6·3사태.③‘푸른 도나우’ 등 남겨요한 스트라우스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왈츠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나 은행원이 됐으나 음악에의 뜻을 버릴 수 없어 작곡공부를 하여 악단을 조직하는 한편 ‘푸른 도나우’를 비롯,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1899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④왕관보다 사랑 택해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왕관보다 사랑을 택한 왕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심프슨여사와 결혼을 하려 했지만 이혼경력이 있어 뜻을 못 이르자, 그는 서슴없이 왕관을 버리고 1937년 오늘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독(親獨) 발언이 문제되었다는 설도 있다.⑤결혼은 생활의 창조…프랑스의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알랭은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비평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결혼에 대해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기 위해, 또는 참고 견디기 위해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창조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51년 오늘 83세로 타계.《6월 4일》 ①중국 군벌 장작림 폭사중국 군벌인 장작림(張作霖)이 장개석의 북벌군에 패하여 북경에서 본거지 심양으로 돌아가던 종착지를 얼마 안남기고 폭발사건으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절명했다. 그날이 1928년의 오늘이었다. 이 폭발사건은 일본군의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②한국 최초의 ‘성경’ 번역우리나라 사람으로 기독교 성경을 처음 번역한 사람은 이수정(李樹廷)이란 사람이다. 그는 임오군란 후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4년간 머물렀다. 그러던 1883년 오늘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1885년 귀국한 그는 기독교 활동을 하던 중 관헌에 의해 암살됐다. ③연합군 로마시 입성제2차 세계대전 때 유엔군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점령한 것은 1944년 6월 4일이었다. 정세가 이 같이 바꿔지자 이탈리아 왕실은 연합국에 정식으로 항복하고 뭇솔리를 수상에서 몰아내고 바도리오 새 정권을 수립케 했다. 뭇솔리는 그후 게릴라에 의해 살해되었다.④비운의 정치가 장면 서거제2공화국의 내각수반이었던 장면(張勉) 총리는 1960년 5·16 군사혁명에 의해 정권을 빼앗긴 비운의 정치가였다. 수원고농을 거쳐 미국 맨하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그는 국회의원, 주미대사, 국무총리, 부통령을 지냈다. 4?19 후 내각책임제의 총리가 됐다. 1966년 오늘 서거.⑤일본 공수도의 왕자일본 가라태(공수도)의 왕자 최영의(崔永宜)는 1923년 오늘,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2년 미국에 가서는 소와 싸워 일곱 마리를 맨주먹으로 즉사케 했고, 프로 레슬러 및 복서들과 대전, 모두 KO로 물리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본에 귀화한 그의 이름은 오오야마(大山倍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