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국회의원 이광철 - 세여자 이야기1
내가 사랑했던 여인들. 지금부터 고백하는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전체 이야기(full story version)를 들려준 적이 없는, 그야말로 진한 '사랑 이야기'(love story)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가슴에 한 사람쯤 품고 사는 여인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도 그런 여인이 있다. 무려 셋이나 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세 여인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이들은 내게 힘이 되어주고, 따듯한 동무가 돼 주고, 다정한 애인이 돼 주곤 했다. 먼저 첫 번째 여인을 소개한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상점에 걸린 스웨터를 보면서 어머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이 새벽기도를 가실 때나 심방을 다니실 때 입으면 참 따뜻하고 곱겠구나 하고요... (중략) 어머님께 따뜻한 진지 한 그릇 올리지 못하는 불효막심한 놈이지만, 남의 것을 훔치고 나만이 잘 살기 위해서 이웃을 해하는 그러한 자식은 아닙니다... (중략) 저는 매일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만일 예수가 불쌍한 이 땅에 왔다고 한다면 예수는 어떻게 살까”...(중략) 이 자식이 부족하지만 예수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제가 하는 일을 예수도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중략) 어머님이 우리 식구들의 십자가를 혼자 다 메셨다고 생각됩니다..(중략) 제가 그 십자가 중에 눈꼽만큼이라도 나눠가질게요...(중략) 추운 겨울날 이 스웨터로 따뜻하게 지내세요.” 1991년 1월23일 불효자 이광철 올림.1990년 3당합당 반대투쟁에 앞장서다 다시 맞이한 수배생활 중에 우연히 옷가게에 걸린 스웨터를 보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어머님께 보내드리면서 내가 썼던 편지글의 한 대목이다. 숨 가빴던 당시 정세가 엿보이는 ‘전북민련 ’90하반기 활동 약평’이라는 제목의 문건 뒷면에 긴박하게 써내려갔던 이 편지에는, 지금은 백발성성한 할머니가 되신 어머님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인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유일한 후원자이자, 동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배, 징역으로 밤을 지새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나를 믿어주셨다. 갖은 고난, 어떤 시련이 와도 나를 신뢰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주신 분. 바로 나의 어머니다. 나 역시,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오고, 유혹의 손길이 뻗쳐 와도 흔들리거나 굴하지 않았다. 때론 힘들어하는 아내와 어린 딸이 불쌍해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텨냈다. 밥그릇에 떠 놓은 물마저 얼어버리는 엄동설한의 차가운 0.75평 독방에서 새벽녘에 깨어 멀리 바람에 밀려오는 새벽 교회 종소리를 듣노라면, 아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곤 했다. 나는 그 기도소리를 떠올리며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다.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따뜻한 진지 한 그릇 제대로 올리지 못한 못난 불효자식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