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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올림픽 출전 감독 ID카드 공개

한국이 태극기를 달고 첫 출전한 1948년 제14회영국 런던 올림픽.이 올림픽에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한 고(故) 이병학(李丙학.1900∼1963) 총 감독의 ID카드가 58년만인 31일 처 조카인 김인기(68.고서화 수집가.전북 익산시)씨에의해 공개됐다.이병학씨는 한글학자인 고(故) 정인승 박사와 사돈지간이며 지난해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링컨박물관 개관 기념행사에서 에세이 대상을 수상해 한국의 기개를 떨친 한국계 이미한(18)양의 친 증조부이기도 하다.또 정박사와 이씨는 고창고보(현 고창고)에서 각각 국어와 체육을 가르치기도했으며, 특히 이씨는 보성전문학교에 체육교수로 재직하면서 보전송구부를 창단(1939년)해 한국에 7인제 핸드볼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엽서 2장을 합한 크기의 한 장짜리인 이 카드(IDENTITY CARD)는 런던 올림픽(1848.7.29∼8.14)이 열리기 40여일 전인 6월18일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발급하고미군정청이 신원을 인증하고 있다.우리 정부의 탄생이 그 해 8월 15일인 탓에 이 카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군정청이 인증하고 있어 우리 역사의 질곡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여권의 앞면 왼쪽에는 담뱃갑 크기의 사진이 붙어 있고 오른쪽에는 발급 순번(NO.7348)과 대회명(XⅣ OLMYPIAD LONDON 1948), 영문 이름(LEE PYENG HAK), 직위(TEAM ATTENDANT), 런던올림픽 위원장의 서명 등이 표기돼 있다.또 뒷면에는 이씨의 생년월일과 출생지,국적,미군청정의 인증, 발급 일자 등이나란히 기재돼 있다.이 때문에 이 ID카드는 신분증의 역할 뿐 아니라 일종의 여권 기능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고 김씨는 전했다.김씨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병학 선생의 아들(이봉기)로부터 출전 당시의 상황등을 편지로 전해 받았다"면서 "그는 이 카드를 `여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봉기씨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신탁통치로 남북이 갈라져 어수선한 당시 분위기 ▲한국에서 만든 `올림픽의 노래' ▲올림픽 출전 경비 마련을 위한 후원권 발행 등의 내용이 상세하게 들어있다. 제14회 런던올림픽은 일장기를 단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제11회 독일 베를린올림픽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됐다 12년만에 재개된 올림픽으로 한국은 선수 50명과 임원 17명 등 모두 67명이 참가했다.이 대회에서 한국은 김성집(역도)과 한수안(복싱)이 각각 동메달을 획득해 올림픽 시상대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동메달 2개로 종합 11위를 차지했다.대한올림픽위원회는 "한국이 첫 출전한 런던올림픽 당시의 여권이나 ID카드는전혀 없기 때문에 총 감독이었던 이씨의 ID카드와 기록물들은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가진다"라고 말했다.

  • 지역일반
  • 연합
  • 2006.04.04 23:02

극단명태 '이등병의 편지' 전북연극제 최우수작품상

극단 명태 전성기다. 작품 ‘이등병의 편지(최정 작, 최경성 연출)’로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전북연극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대표 최경성씨는 연출상을 받았다. 아직도 정치적 난맥상 속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아픔을 되짚어본 ‘이등병의 편지’는 연기력 중심의 순수한 극 전개가 오히려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최경성대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풀어가야할 역사적 과제를 말하고 싶었다”며 “극단 창단 10주년을 맞는 올해 전국연극제에 참가하게 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작품을 손질해 전국연극제 참가전 전주관객들과 만날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극단 명태의 ‘이등병의 편지’와 극단 황토의 ‘꿈꾸는 나라’, 창작극회의 ‘辛, 태평천하’ 세 작품의 경연으로 치러진 제22회 전북연극제는 3일간 경연을 펼친뒤 2일 폐막했다. 세작품 모두 전북지역 극작가들의 창작극으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올해 전북연극제는 주목을 받았다.우수작품상은 황토의 ‘꿈꾸는 나라(김정수 작, 정두영연출)’가, 장려상은 창작극회의 ‘辛, 태평천하’가 각각 수상했다. ‘꿈꾸는 나라’는 작품의 완성도와 연기력 등이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辛, 태평천하'는 판소리와 꼭두각시놀음 기법을 활용한 실험적인 형식이 돋보였다.희곡상은 김정수(황토)씨가, 무대미술상 안무부문은 공동규(황토), 최우수연기상은 김영주(황토) 우수연기상은 배건재(창작극회) 김준(황토) 백호영(명태)씨가 수상했다.심사는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교수, 안상철 풍남제전위원회 총감독, 조민철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이 맡았다.명태의 ‘이등병의 편지’는 오는 10월 경기도 수원에서 열리는 전국연극제에 전북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 지역일반
  • 은수정
  • 2006.04.04 23:02

[알림] 알려드립니다 - 2006년 4월 04일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학생과 졸업생 만남 행사 = 8일 오후2시∼6시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강의실, 임문과학대학 소운동장, 270-2952.◆ 김학관씨(임실군 의회 후보) 사무실 개소식 = 5일 오후2시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미미예식장 옆, 642-5512.◆ 전북대병원 척수장애환자 무료 검진 = 4일 오전9시∼4시 본관 지하 모악홀.◆ 자연보호전라북도협의회 ‘식목일 기념 소나무 무료분양 및 삼천천 자생식물 전시장 조성’ = 5일 오후2시 삼천천 세네교 밑 둔치, 소나무 묘목 2000주 선착순 무료배부, 278-2332.◆ 도강 김씨(회장 김환남) 시조 및 파조 춘향대제(전남 강진 둔덕사) = 8일 오전6시30분 전주시청 민원실 앞, 010-6810-5595.◆ 전주 한백산악회(회장 김환남) 전남 여천 영취산 및 호랑산 = 14일 오전7시30분 전주 기린로변 구 한진고속, 회비 13000원, 010-6810-5595.●소상공인무료홈페이지지원 · ·홈페이지를 제작,수정 ·소상공인들의 지역적인 제약극복 ·사업영역확대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지원 ·[전주소상공인지원센터] ☏231-8110 ●신나는 노래교실 · ·기간:2006년 4월5일~12월까지 ·일시:매주 화요일 10:00~12:00(2시간) ·강의내용:포크송,가곡,가요,Pop Music,음치 교정,가수초청 감상(월1회) - 상황에 따라 대체 ·수강인원:50명 ·장소:완산청소년문화의집 1층 공연연습실 ·[전주시 완산청소년문화의집] ☏226-5193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원봉사자 및 후원자 모집 · ·나눔월드는 소년소녀가장을 주력으로 돕는 비영리단체로 마음이 따뜻한 회원 및 후원자를 모집합니다. ·대상:봉사활동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문의:나눔월드(사회복지NGO) ·www.nanumworld.org ☏0502-123-5886 ●국제결혼 이주여성 한국어 교실 · ·일시:2006년4월9일(일)오후2시~오후4:30분 ·장소:전주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전주고속터미널 부근) ·[전주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 ☏(063)275-4401,272-2794

  • 지역일반
  • 미디어팀
  • 2006.04.04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고려충신 포은 정몽주 피살

①정몽주, 선죽교서 피살“이 몸이 죽고주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를 읊으며, 고려조에 충성을 다 한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가 개성의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에게 피살된 것은 1392년의 오늘이다.②향교 이용, 중학을 설립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중등교육제도가 실시된 것은 1899년의 오늘, ‘중학교 관제’가 공포되면서이다. 교실은 우선 각 지역의 향교를 이용했다. 그러나 취직이 잘 되지 않아 초창기엔 인기가 없었다.③한국청년문필가협회 결성8·15 후, 문단은 문학가동맹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좌익계로 흐르자 정인보를 회장으로 한국문필가협회가 발족됨에 이어 1946년 오늘에는 청년문필가협회가 조직 되었다. 위원장 김동리, 부위원장 최태응.④미국 흑인 킹 목사 피살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오늘, 테네시주에서 한 괴한이 쏜 총탄에 의해 피살됐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은 흑인소년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⑤‘주민등록증’ 상시 휴대케6·25 동란 후, 사회혼란을 틈타 ‘출동하는 남파간첩 및 불순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양민증‘, 다음은 ’도민증‘을 상시 휴대케 했었다. 그런데 1969년 오늘부터 ’주민등록증‘으로 갱신.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4.04 23:02

[오목대] 손님맞이 유감

닝푸쿠이(寧賦 ) 주한중국대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모국어를 하듯 빠른 말로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할 줄 아는, 매우 수준 높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교관이다. 그런 그가 지난 30일 오후 우석대에서 ‘바람직한 21세가 한·중 관계의 정립’을 주제로 특강하기 위해서 전주를 방문하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한중경상포럼 주최 조찬모임에 참석하여 중국이 표방하는 일곱 가지 핵심사안을 소개하기도 하였다.중국에서는 설날 연휴 7일간 관광객만 7800만에 이르고 연인원 2억 명을 수송하며 200억 달러의 소비가 발생한다고 한다. 100억 건의 문자메시지가 이 기간 동안에 왕래한다고 하니 IT강국인 우리나라가 무색할 지경이다. 사회주의 신중국 건설을 위해서 농촌의 발전이 필수적인데 이는 전체 13억 인구 중 8억이 농민이어서 ‘농민이 편안해야 천하가 편안하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고 한다. 농산품 가공분야, 농업기술분야, 소형·다기능 농기계 생산 등 농촌에 필요한 중소기업 진출이 유망하여 큰 도시보다 그 주변의 위성도시 진출을 권장하기도 하였다.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동북 3성의 중공업기지 그리고 서부 대개발을 통한 유럽과 중앙아시아 진출 등에 관한 인급과 개혁방안을 심화·발전시켜 나갈 예정임을 밝혔다. 특히 2001년 WTO 가입 이후 서비스업이 개방되어 규제가 많이 완화되어서 금융·보험업이 유망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중 80%가 제조업이어서 사업영역이 지나치게 한 편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전주시는 올해의 시정방향을 ‘만리장성을 넘어서’라는 표현으로 상징화한 모양이다. 중국시장 진출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는 한 해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대중국 시대를 대비한 인프라 구축과 바이전주 상품과 전략산업의 중국시장 개척, 전통문화를 산업화한 한류 중심지로의 육성이라는 사업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했다고 한다.이런 목표와 계획이라면 주한중국대사가 전주를 방문하였을 때를 기회로 삼을 법도 한데 관계 공무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진출을 올 해의 사업으로 정했다면 자발적으로 찾아온 닝푸쿠이 중국대사를 만나서 전주시의 사업에 관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옳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4.04 23:02

[기자의 눈] 道 '전주시 표적감사' 했나

전주시가 지난 2일 전북도가 전격 발표한 정기감사 결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감사과정에서 감사결과, 발표시기 등 모든 부문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전북도는 전주시에 대한 감사결과(2월20일-3월6일) 총 108건을 적발했다.하지만 전주시 공무원 대다수는 표적감사가 아니냐며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대표적으로 시정발전연구소의 고속철도와 전북발전방안, 자기부상열차 등에 대한 연구사례를 꼽았다.지역발전사례를 조사연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잘못된 사례로 지적했기 때문.통상적으로 지적사항과 함께 발표되던 수범사례가 빠진것도 의문을 갖고있다.특히 지방선거이후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던 감사결과가 앞당겨 발표된 배경에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감사를 받은 김제시(44일)나 고창군(54일)과 비교할때 상대적으로 빨리 발표됐다는 불만이다.게다가 중징계를 받은 K국장은 올해초 도 고위층과 자기부상열차와 관련 성명전을 펼쳤던 장본인이다.이를 종합해보면 전주시 흠집내기 감사에 불과하다는 게 시 안팎의 주장이다.시 공무원들은 강현욱 지사와 김완주 전 시장이 도지사후보 경쟁구도속에서 이같은 결과는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너무 심한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물론 전주시는 시행정의 부실한 면이 지적된 이번 도의 감사결과를 검허하게 수용해야한다.감사의도를 떠나 행정혁신기회로 삼아야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없다.하지만 시 공무원의 생각처럼 도 감사가 의도적이라면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야하는 행정의 기본을 저버리는 처사일 것이다.시 공무원 대다수가 이 같은 피해의식을 가지고있다 것은 사회적 낭비다.전북도나 전주시 모두 도민들을 위한, 시민들을 위한 행정혁신에 총력해야한다.그것이 결국 지역발전으로 연계된다는 게 대다수 도민들의 생각이다.

  • 지역일반
  • 구대식
  • 2006.04.04 23:02

[발언대] 농민 두번 울리는 수입쌀 시판 - 강록춘

작년 11월 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올해 2만 2,557톤의 수입쌀이 "밥 짓는 쌀"용과 가공용으로 시판될 계획이다. 그 동안 농민들이 강력히 반발해 온 수입쌀 시판이 드디어 현실화되었다. 최근 미국산 칼로스 쌀 2,752톤, 중국산 가공용 현미 5,400톤이 한국땅에 하역되었다. 우리쌀의 재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쌀이 시중판매 됨으로 인해 쌀값하락은 피할 수 없으며, 미국산이든 중국산이든 수입쌀이 가격경쟁력에서 국내산 쌀보다 우위에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농민은 이미 의욕상실과 패배감에 젖어 있다. 물론 정부가 공공비축제, 쌀 품질 고급화, 고정 직불금 상향 지급 등 쌀 농가의 소득보전제도를 마련했다지만 이러한 정부의 지원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농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농민은 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의 결과에 대해 이미 한 번 울었다. 수입쌀 시판으로 인해 농민이 또 다시 우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우리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소비자인 국민은 품질 좋고 가격 또한 절감할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수입쌀이 공매와 유통 그리고 소비자의 손에 이르까지 모든 유통의 각 단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원산지표시제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이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이요, 농민의 최소한의 권익을 지켜 내는 길이다. 만일 시판용 수입쌀이 국산으로 둔갑 판매된다든지 가공용 수입쌀이 밥 짓는 쌀로 둔갑되어 시장에 유통된다면 이는 우리 농민을 두번 울게 만드는 것이다.정부는 농산물 명예감시원과 대대적인 합동단속을 전개하여 수입쌀의 부정유통을 철저히 감시하고 단속함은 물론 소비자인 국민 또한 원산지가 허위 표시되거나 수입쌀이 국산으로 둔갑 판매되는 일이 없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봐주어야 한다. 이는 이 땅에 사는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 아니겠는가. 두 번 다시 농민을 울게 하지 말자./강록춘(농협 교육연수부 팀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4.04 23:02

[열린마당] '붉은악마'대신 '치우기'로 부르자 - 서승

월드컵 축구대회가 다가오니까 유명한 응원단 ‘붉은 악마’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축구동호인들이 국위를 선양하기위해 응원단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신바람 문화’를 한껏 자랑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진정 ‘붉은 악마’들은 ‘열두 번째 국가 대표선수’로 인정하고도 남을 만한 자격이 있다. 또 한 ‘붉은 악마’를 통해 수 천 년 동안 잊어버렸던 우리들의 조상 ‘치우(蚩尤) 천제(天帝)’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어서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인 ‘열두 번째 국가 대표 선수’의 이름을 ‘붉은 악마’로 부르는 것은 꺼림칙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기왕이면 ‘붉은 악마’ 보다는 ‘치우기(蚩尤旗)’라고 고쳐 부를 것을 정중하게 제안한다. 필승의 서기(瑞氣) 붉은 깃발 ‘치우기’‘붉은 악마’의 단복, 붉은색의 유래를 더듬어보면 ㅎ,ㄴ ㅂ,ㄺ사상으로 이어온 우리는 밝고 환한 색깔을 좋아했던 민족입니다. 환웅(桓雄)의 배달(倍達)도 환하고 밝음에서 나온 이름이요, 백두산(白頭山)도 원래는 밝산(白山), 붉산(紅山), 적봉(赤峯)의 전음이다. 또 옛날부터 붉은 깃발을 ‘치우기’라고해서 필승을 다짐하는 상서로운 깃발로 여겼다. 깃발처럼 긴 꼬리를 가진 혜성(彗星)을 ‘치우기성(蚩尤旗星)’이라고도 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보면 초고왕(肖古王) 26년 9월에 치우기성이 각항성(角亢星)의 위치에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온다. 중국 역사책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는 유방이 전쟁에 나갈 때 치우에게 제를 올리고 나가 이겨 한(漢)나라를 세우고 치우사당까지 세웠다고 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도 전장에 나가기 앞서 치우제(蚩尤祭)를 올렸다는 기록을 난중일기에 남겼다. 치우는 배달국 14대 환웅(桓雄)중국의 사기(史記) 첫머리에는 치우를 구리 투구와 철가면을 쓰고, 바람과 비를 부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묘사하면서도 황제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이겼다고 썼다. 공자가 난신적자(亂臣賊子)라고 규정한 이후 사마천을 비롯한 중국의 많은 사가들이 치우(蚩尤)를 귀신과 도깨비로 묘사했다. 그러나 치우는 천병(天兵)을 서쪽으로 일으켜 색도(索度=산동성)로부터 중원을 차지해서 청구(靑丘)에 도읍한 배달국(倍達國) 14대 환웅이다. 우리는 삼국유사 이래 환인(桓因)의 아들이 환웅(桓雄)이요 곰의 아들이 단군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가 신화로 치부하고 역사로 취급하지 않는 동안 중국에서는 우리가 내버린 조상 시조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모셔가고 있다. 최근 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한가운데에는 치우천제(蚩尤天帝)가 있다. 사기(史記) 이후 2천년 동안 중국은 자기들의 시조를 황제라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동이족 청(淸)나라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신해혁명 이후 120년 전부터는 황제의 정적이었던 염제(炎帝) 신농(神農)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추가해서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 표방해 오더니,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하면서는 치우까지 자기들의 조상으로 추가했다. 북경(北京) 서쪽 160Km의 탁록 국립공원 귀근원에 있는 황제 사당현판을 삼조당이라고 고쳐 달고, 안에는 황제와 염제, 치우상을 나란히 모셔 놓고 있다. 우리 언론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 가려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시들하지만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배달국 환웅(桓雄) 치우(蚩尤)를 비롯해서 고조선과 고구려,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통째로 삼키려는 계획을 은밀히 추진해 왔던 것이다. 치우기로 신바람 문화를 꽃 피우자 ‘붉은 악마(Red Devils)’는 우리 역사 문화의 뿌리를 모르고 부르는 애칭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로 붙인 이름일지라도 우리 겨레 조상 영웅 치우 천제를 악마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꺼림직 한 일이다. 우리 역사 문화의 뿌리, 단군과 치우를 잃으면 우리 겨레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 대신 상서(祥瑞)로운 징조, 붉은 깃발, 우리 조상 영웅의 이름을 따서 ‘치우기’로 고쳐 부르면서 모처럼 일기 시작한 ‘신바람 문화’의 꽃을 더욱 활짝 피워보자. /서승(전주문화원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4.04 23:02

[나의 이력서] 국회의원 이광철 - 6월 항쟁 '한판의 축제'

연초부터 고 박종철 군에 대한 군사독재정권의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드디어 87년이 밝아왔다. 87년 벽두는 재야, 정치권, 청년학생, 시민이 모두 함께한 “2.7고박종철군국민추도회”, “3.3고문추방민주화국민평화대행진” 등으로 숨 가쁘게 흘러갔다. 나는 그해 4월 11일, 이재오, 박계동 등의 동지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날 우리는 사람들의 권유를 못 이겨 계룡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러나, 시대의 엄혹함이 신혼을 즐길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4.13호헌조치로 인해 다시 거리로 달려 나가야 했던 것이다. 한 동안 나는 결혼에 대해 경직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가하게 연애나 할 때인가?’라는 편협함이나, 결혼한 선배, 동료들이 쉽사리 가치관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경계의식’ 같은 그릇된 관념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조차 구체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어떻게 만인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곧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신혼집은 예수병원 뒤편의 허름한 단칸방이었다. ‘후지카’ 곤로에, 작은 장롱과 찬장, 이불채가 살림의 전부였다. 그래도 언제나 신혼집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연일 집들이가 이어졌다.그러나, 신혼생활은 채 2달도 가지 못했다. 6.10 대항쟁의 날이 있기 며칠 전 정보기관원들이 집을 급습한다는 제보를 받고 급히 몸을 피한 후, 한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카톨릭센터 별관에서 신문을 덮고 자면서 다가올 투쟁을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전북/전주의 6월 항쟁은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었다. 단순한 집회, 시위가 아니라 문화예술과 전통이 어우러진 대동한마당의 장이었다. 마당극, 정세토론, 촛불행진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결합된 시위현장은 잘 기획된 한판의 축제같기도 했다.6.10부터 6.29까지 팔달로, 관통로는 그야말로 해방구였다. 끝이 안 보이는 인파로 뒤덮인 거리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곤 했다. 관통로 사거리에서는 매일처럼 대동한마당이 펼쳐졌다. 코아백화점 앞 육교는 시위대의 ‘연단’이었고, 육교 밑으로 길게 늘어뜨린 플래카드에 적힌 ‘님을위한행진곡’은 ‘도민의노래’였다. 시위 때마다 새로운 시민 연사가 등장해 현장열기를 뜨겁게 달구었고, 목사, 신부 등 종교인들은 시위대 앞에서 대오를 이끌었다. 중앙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백골단에 쫓기던 시민,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시위 때마다 자발적으로 수백만원씩의 성금이 걷혔고, 심지어 코아백화점 업주들까지 성금을 모아주었다. 우리는 그 성금으로 ‘민주광장’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항쟁을 독려했다. 나는 당시 전북민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이 대항쟁의 과정에서 나는 매일 매일의 투쟁을 기획, 총괄하면서 시위 때마다 연단에서 연설을 했고, 시위가 끝나면 다시 카톨릭센터로 들어가 내일의 투쟁을 설계했다. 군산, 이리(익산) 등 전북의 모든 지역이 항쟁으로 들끓었다. 군산 기지촌 여성들은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시위에 참여했고, 이리공단의 노동자들도 연일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다. 6월 민주대항쟁은 전 국민적 참여로 일궈낸 성과였다.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6.29 선언을 이끌어내고,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민주헌법을 쟁취해 낸, 역사적 쾌거였다. 무엇보다 항쟁의 과정에서 그 동안 억눌려 있었던 우리 국민의 역동성과 창조적 상상력이 발현됐던 것은 크나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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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6.04.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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