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칼럼] 이런 선생님을 찾습니다 - 김승연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 바쉠’(Yad Vashem)이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야드 바쉠은 ‘기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이라면 히틀러 시절 6백만 유대인의 학살을 절대로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하자”는 뜻에서 1945년을 기점으로 유대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유대인 학살 기념박물관입니다.내부 관람을 마치고 뒷마당으로 나가면 바깥에 동산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엔 어린 아이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높이 서 있고, 그 뒤 언덕 기슭에 한 어른이 어린 학생 여남은 명을 끌어안고 있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 동상의 이름은 독일어로 “Korzak und die Kinder des Getto” (코르작과 게토의 어린이들)입니다.독일 나치가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서 어느 유대인 학교를 급습했습니다.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유대인 아이들은 나치 군이 나타나자 자기들을 붙잡으러 온 것으로 알고 겁에 질려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독일 나치에 의해 학살당하는 장면과 모습들을 수없이 듣고 보았던 아이들이라 어찌 독일 나치 군을 보고 태연했겠습니까?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는 학생들을 코르작 선생님은 양팔로 그들을 감싸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무섭지 않지?”물론 학생들은 나치 군이 몰고 온 트럭에 실려졌습니다. 코르작 선생님은 학생들만 트럭에 실려 보내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수용소까지 함께 끌려갔으며, 마침내 가스실까지 함께 들어갔습니다. 가스실에서도 선생님은, “얘들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학생들을 꼭 끌어안고 함께 죽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학생들과 함께 희생당한 이 숭고한 코르작 선생님의 박애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기억의 집 바로 뒤에 기념 동상을 세워놓은 것입니다.나는 그 동상 앞에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코르작 선생은 바로 용기 있는 폴란드인이었습니다. 그는 독일 나치 군에게 끌려갈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으로서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 제자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제자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고, 제자들과 함께 수감되었고, 마침내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어야만 했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죽어갔습니다. 독일 나치들이 그렇게도 미워하는 유대인 학생들이었지만 코르작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는 스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행함으로 보여준 역사상 길이길이 기억될 위대한 선생님입니다.우리나라에도 일제 36년 압박 시절에, 좋은 선생님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코르작 선생님과 같은 사도가 그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X세대와 N세대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패션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X세대와 N세대가 적용됩니다. 그러나 X세대와 N세대를 만든 사람들은 바로 기성세대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만들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교사들이 만들었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상도덕이 만들어 낸 불행한 졸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바른 교육이념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지 못할 때 X세대와 N세대는 계속 양산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청소년 문화는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유치원에, 학교에 코르작 같은 선생님이 없는 한…./김승연(전주서문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