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한 교수의 미국교육 현장일기] 문서 성적표와 이메일 성적표 - 이경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이곳은 3/4분기를 넘어 4/4분기로 접어들고 있다. 한 분기를 마치면서 그 동안의 학업활동에 관한 결과도 나온다. 두 아이들이 하굣길에 3/4분기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왔다. 아이들에게 수고했다는 말보다는 습관적으로 과목의 점수에 더 먼저 눈이 갔다. 아마도 대부분 비범하지 못한 부모들은 나와 같은 심정으로 자녀들의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성적표를 한두 번 받아보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은 나의 속내를 다 알고 있겠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 성적이 아닌 다른 란부터 살펴보았다. 이곳의 성적표는 보통 분기별로 4회 발급되는 문서 성적표와 주기적으로 전달되는 이메일 성적표가 있다. 보다 공식적인 문서 성적표에는 과목명, 교사명, 이수단위, 점수가 제시되어 있다. 과목별 점수는 평점으로 부과되어 있으며, 담당교사의 간단한 코멘트, 그리고 학교통신과 상담교사명이 적혀있다. 물론 등수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담당과목 교사의 코멘트가 있는 점을 빼고는 우리네 성적표의 양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메일 성적표는 전체 성적과 과목별 성적이 제시되어 있는 점은 문서 성적표와 같으나, 그 내용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여기에는 학생의 과목별 출결사항, 퀴즈시험, 과제제출여부, 일자별 과제부과 내용 및 점수, 수행활동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정도 등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나의 관심을 끈 흥미로운 내용은 과목별 성적산출근거의 제시다. 예를 들어, 큰 아이의 영어 성적표의 내용을 보면, 3/4분기에 숙제 6회, 수업중 제출물 8회, 그리고 퀴즈 시험 2회 등 16가지의 산출근거가 있다. 매 과업마다 만점과 획득 점수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절대평가로 평점을 주고 있다. 학기말고사가 없는 시기이어서 수행평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전달되는 이메일 성적표를 통하여 교사의 수업활동과 이에 따른 학습활동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성적표는 과목별 주요 수업활동 요소를 제시해주어 한 과목 안에서도 아이가 잘하는 내용과 부족한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이해와 교사의 평가활동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메일 성적표가 미국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은 교사의 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존중하는 조건과 그 전문성을 존중받기 위한 교사의 도덕성이라고 본다. 성적표는 일정기간동안 학생의 학업활동에 관한 보고서다. 고로 이 성적표는 단순히 학교내의 석차를 말해주는 도구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의미로운 정보를 보다 상세하게 담아서 학부모들에게 전달하는 의미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는 이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여 자녀의 학교생활이나 학업능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성적표가 보다 많은 정보를 담은 문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업무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인데, 이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책은 교육환경, 그 중에서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명박 정부의 어떤 교육정책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이경한(전주교대·美 메릴랜드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