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4월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올해 대선에서 진보적 성향의 후보와 보수적 성향의 후보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1.7%는 진보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반면 보수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17.5%에 그쳤다.
평소 한국사회가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온 것에 비해 이것은 매우 뜻밖의 결과이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대단히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정작 진보정당의 지지도는 아직 5%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에 주목하게 된다.
현재 정당을 놓고 볼 때 자신들의 주장대로 자민련=보수, 한나라당=개혁적 보수, 민주당=중도보수, 민주노동당=진보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에서야 이렇게 약간은 애매한 보수와 진보로 정치세력을 구분하지만 유럽은 더욱 선명하게 정치세력을 좌우로 구분한다.
프랑스를 예로 들자면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번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극우로 분류되는 국민전선은 외국이민자 추방 등을 주장하는 반면 프랑스 공산당은 일찌감치 사회당에서 분리해 나와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며 사회당과는 스스로를 구별하고 있다.
한가지 아이러니는 대표적인 극우파시스트 정당인 히틀러의 나찌당의 정식 명칭은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다. 이름만 보면 좌파정당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좌우의 구별법은 통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좌파 정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좌’를 표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의 여론조사결과로 되돌아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지만 정작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이 넘는다. 스스로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현상이 정체성의 혼란을 적절히 나타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싶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똑같이 공평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출발한다. 근대시민혁명의 원형으로 불리는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는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을 기치로 공화국을 선포하고 부패한 봉건귀족들만 갖고 있던 투표권을 거의 모든 성인남자에게 부여했다.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으며 우리는 지금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과정이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산, 지위, 학력, 성(性)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진보가 의미있어 보인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주의의 폐해, 분단 상태의 지속,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등이다.
출신지역에 따라 이해관계를 동일시하는 맹목적 지역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이 다수 소속된 정당에 모든 것을 의존해버린다. 그런 면에서 지역주의의 극복이 진보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지역주의와 부딪쳐온 노무현씨가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것 또한 진보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느냐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 역사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사회나 지켜야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소수의 특권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수구일 따름이다. 아울러 보수나 진보 모두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지 않으면 수구에 빠져버릴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위치에 서있습니까?
/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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