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2.9%이며 이는 세계평균 1.5%보다 2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과 부산 등 5대 광역시에 사는 15살 이상 시민 729명을 대상으로 '에너지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절반 가까이가 한겨울에도 집안의 '과도한 난방' 때문에 반바지나 런닝 차림으로 지낸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53.2%는 지난 겨울 내복을 입지 않았으며 이 가운데 73.6%는 올 겨울에도 지난해 정도의 기후조건이라면 내복을 입을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했거나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에너지 낭비 습관으로 '한겨울에 반바지, 2~3층도 엘리베이터'를 꼽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녹색연합과 몇몇 시민단체가 2003 내복입기 캠페인 열었다. '내 福의 함성을 높여라!'에서 알 수 있듯이 내복을 입어 실내온도를 낮추고 에너지를 절약하여, 지구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자는 취지의 '내 복(福)찾는 캠페인'이다. 생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내복체조 시범'을 선보이고 운동을 통해 건강도 지키고, 내복을 입음으로써 경제도 살리는 1석 2조의 프로젝트 '내복입고 운동하는 이에게 겨울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는 추위를 이겨내는 건강한 웃음,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자부심으로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내 주변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에게 내복을 입었는가를 확인해보면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결과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어제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복을 입고 출근했다. 물론 따뜻하고 심적으로 든든하고 밖이 춥다고 해도 활동하는데 거리낌없어 참 좋다. 나는 내복예찬론자가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겨울에는 내복을 입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추워서 활동을 못하거나 하루종일 난로 없이 살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에게 차라리 내복을 입으라고 권장하고 싶을 뿐이다. 주변에서 내복을 입지 않는 이유는 답답해서, 몸이 둔해서, 추위에는 강하니까, 나이도 젊은데 등 등 다양하다. 그런데 97%이상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에너지 소비 세계 제11위인 국가에서 살고 있는 내가, 내복을 입어 건강도 지키고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실제로 내복은 5도정도의 온도 상승효과가 있으며 실내온도 1도를 낮추면 도시근로자 기준으로 연간 1,548억 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거리에 오가는 남녀 멋쟁이(?) 들은 반팔 차림이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추위보다도 멋스럽게 보이는 게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카페나 실내 매장, 백화점의 직원은 바깥 날씨와는 정반대의 기온에서 근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올 겨울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보내면서 에너지 소비도 줄이고 국가경제도 살린다는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지난 주 올 가을 들어 최고 추위를 기록했던 토요일, 많은 시민들이 투툼한 겨울 외투를 꺼내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른 새벽 재래시장에는 곱은 손과 언 몸을 녹이는 장작불들이 등장한 지는 오래고 얼어붙은 소비경제는 두터운 털외투를 입게 한다.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쟁반대, 파병반대 집회장의 시민들, 특히 강제추방에 내몰린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는 더욱 필요한 듯 싶다. 그리고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부안에서는 '핵폐기장반대'가 적힌 노란색 방한복을 입은 군민들을 볼 수 있다. 연일 삶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매서운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내복을 입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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