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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 펴낸 서호승 신부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 992-5번지. 시내에서 차로 5분 거리지만, 고덕산의 한 줄기인 남고산과 꽤 넓은 논과 밭이 있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흑석골. 그곳엔 지난해 8월 둥지를 튼 대한성공회 전주희망교회 관할사제가 살고 있다. 대구 사투리가 짭짤한 양념처럼 묻어나는 억양으로 "얼굴의 반쪽을 내줬지만, 진정한 내 모습을 찾게 됐다”고 말하는 '새내기 전주사람' 서호승 신부(45)다.

 

"제 아픔에 감사합니다. 고통은 저를 새롭게 했습니다. 고통은 버려야 할 것만은 아닙니다. 그 속에 보물이 있습니다.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입니다”

 

서 신부는 왼쪽 눈이 없다. 광대뼈(상악동)도 없다. 치아도 없다. 그래서 얼굴 반쪽이 움푹 패어 있다. 눈과 잇몸까지 전이된 상악동암 3기를 선고받은 2000년 10월.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는 지난해 사순절(四旬節·그리스도교에서 부활절 전에 행해지는 40일간의 재기) 기간 묵상을 기록한 수상록을 펴냈다. 힘겨웠던 투병과정이 뼈아픈 참회로 새겨진 '뼈아픈 니고데모의 참회'(맑은울림 펴냄). 그는 묵상을 하며 자신의 시야에 선명하게 쓰여지던 참회를 그대로 책에 담았다. 그래서 그는 "썼다기보다 옮겼다”며 "그 참회는 바로 제 자신의 참회”라고 말한다. 니고데모(Nicodemus)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최고의회 의원인 바리사이파 사람.

 

"의사의 말이 끝난 그 순간부터 아무런 빛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저는 단지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만 생각하고 있었죠”

 

진단을 받은 그 해, 그는 이 질문을 숱하게 반복했다. '사제로서 추구해야할 믿음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숫자놀음(헌금 액수·교인 수)만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몸을 돌보았을 뿐 마음은 돌보지 않았구나.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큰 소음을 내던 MRI를 촬영하며 문득 한 문장이 자신의 눈에 스쳐갔다.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그의 고민은 더 진지해졌다.

 

"왜 나는 내 생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내가 아니고,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닌 것을…, 하는 의문과 답변이죠.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음이요, 밖에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겸허하게 자세를 낮추는 것. 그는 사물을 직접 보는 일에 불편해졌지만,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성찰하는 신앙수련법인 '피정'(避靜)을 통해 심연이 밝아졌다. 종교에 관련 없이 수행에 관한 책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책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명상록과 종교서적, 농업과 생명학, 고전문학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참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흘러가는 물 앞에서 자신이 떳떳하지 못함을 시인해야 합니다”

 

얼마전 '사회적 모멸감을 참을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시장의 예를 들며 그는 "직책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세인들의 모습도 깨져야 한다”고 말한다. 직업은 한시적으로 맡겨진 일일뿐 자신과 자연의 본성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나머지 기록들은 '믿는자여 어이할꼬'라는 제목으로 이 달 중에 출간될 예정이다.

 

종교인의 고백이 담겨 있지만, 그의 글은 녹록치 않다. 대구 대건고 재학시절, 문예반 고교 후배였던 안도현 시인은 그를 "차분하고, 사소한 것에 배려 깊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선배라고 폼을 잡거나 괜스레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었다며 배울 것이 많은 선배라고 말한다. 교회 운영도 마찬가지.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상처난 마음을 치료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 일로 사람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한 일터에서 봉사하는 삶을 펼치면 되지요”

 

경남 합천 해인사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이 고향인 서 신부는 1989년 서품했다. 서울 대교회 출판부와 음성나환자촌을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 성당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했고, 부산 주교좌성당을 거쳤다.

 

"나는 없습니다. 가을 하늘처럼 비어있을 뿐이죠. 구름이 가려있다고 푸른 하늘이 사라지거나 바뀌는 게 아닙니다. 하늘은 언제나 거기에 그대로 있습니다. 비어있음을 드러낼 때 하늘나라는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운데 하늘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신 거죠”

 

7일 오전, 마을에서 교회로 난 길의 눈을 말끔히 쓸어내던 그의 마음처럼 그를 비추던 햇살도 참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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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우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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