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7:46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일반기사

[타향에서] '겨레말 큰사전'을 기다리며

겨울 금강산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상들은 금강산을 눈이 없을 때는 개골산(皆骨山), 온통 눈에 쌓여 있을 때는 설봉산(雪峯山)이라고 불렀다. 눈이 없을 때, 금강산은 기암괴석의 뿌리와 겨울산의 뼈까지 드러내 존재의 처연함으로 인간의 영혼을 갈대처럼 흔든다. 그래서 개골산이다. 반면 나뭇가지와 기암괴석까지 온전하게 덮어버린 흐벅진 눈 속의 금강산은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영혼을 솜이불처럼 덮어준다. 그래서 설봉산이다.

 

지난 2월 20일, 설봉산 기슭에서 (사)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장영달)와 북의 민족화해협의회가 함께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를 결성했다. 분단 60년 만에 마침내 <통일국어 대사전> 을 만들자고 뜻을 합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삶 위에 핵의 위협이 먹구름처럼 드리우고 있는 시점에서 <겨레말 큰사전> 을 만들겠다고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모여 겨레의 말과 글과 얼에 대해 가슴을 열어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앞으로 5년 이상이나 계속될 전망이다.

 

금강산에 가기 전,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과연 무사히 <겨레말 큰사전 편찬위원회> 를 결성할 수 있을까?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하자 기다렸다는 듯 미국은 남과 북의 경제협력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미국은 북에 대한 비료지원도 당장 중단하라는 등 강경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실 개성공단 사업이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핵심은 미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미국은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여 우리 민족의 삶이 온전한 평화로 나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남과 북의 관계가 좋아지려고 할 때마다 미국은 핵 위기론으로 남과 북 사이를 긴장 상태로 몰고 갔다’고 발언하지 않았던가? 비료지원을 중단하면, 북의 식량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결국 형제 중의 하나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민족의 현실인데……. 민족사의 하루하루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니, 가슴 속에는 시커먼 납덩이가 성곽처럼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제네바 핵합의를 엄중하고 결정적으로 위반하고 끝내는 파기결정까지 내린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니 북으로서도 벼랑 끝에 몰려 살아야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북핵문제의 본질이다. 그것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한다.

 

이제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가 정식으로 결성되어 역사적인 첫 발자국을 금강산에 찍었다.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이 공동으로 <통일국어 대사전> 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김일성 주석이 흔쾌히 동의한 지 무려 16년이 흘렀다. 지금부터 편찬위원회는 누천년 동안 민족의 삶과 함께 했던 말과 글을 찾아 한반도 구석구석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것을 모으고 모아 한 권의 사전으로 엮어 겨레 앞에 내놓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민족사에 성스러운 한 페이지가 또 기록될 것이다. 아니, 민족사는 이미 새로운 페이지로 접어들었다.

 

/정도상(소설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