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4월 하순에 독일의 잘란트 지방을 다녀왔다. 그 곳에 설립된 KIST-유럽연구소와 독일 연구소를 방문하고, ‘2005 한국의 해’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잘란트는 석탄과 철광석으로 한 때 풍요를 누렸던 곳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보불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을 벌였던 ‘약속의 땅’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프랑스 땅이었고, 다른 때에는 독일 땅이었고, 또 다른 때에는 중립을 표방하기도 했고, 1950년대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스스로 독일에 귀속되어 오늘의 모습을 띠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탄광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잘란트의 경기가 하락을 거듭했고, 지금은 독일의 다른 지방에 비해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지역으로 전락했다.
잘란트는 침체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엄격한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잘란트가 선택한 3대 영역은 ①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IT(정보기술) ②바이오 의료공학을 중심으로 하는 BT(생물기술) ③기어박스와 일부 완성차를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였다.
잘란트 주정부는 필자의 방문을 매우 반겼다. 주정부 공무원 3인과 한국 태생의 통역 1인이 필자일행을 안내했다. 자아브뢰켄 시내를 관광하다가 광장의 한 모퉁이에 다정하게 둘러앉아 씁쓸한 맥주방울을 단 맛으로 넘기기도 하면서…. 자아르강 주변의 옛 성터와 매우 독특한 건축양식의 교회를 보여주고, 아주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대접해 주었다. 그것은 한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느껴졌다.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을 통해서 경제를 되살리려는 짜임새 있는 움직임이었다.
필자는 잘란트 지방을 시찰하면서 한국의 전라북도를 떠올렸다. 어쩌면 아주 흡사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이 모두 1차 산업위주의 산업구조가 드러내는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과거에 독일의 잘란트는 석탄과 철광석 채굴을 통해 부흥을 구가했고, 한국의 전라북도는 농업을 통해서 풍요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 1차 산업들의 쇠락으로 인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잘란트 지방의 노력이 전라북도보다 진지하고 돋보였다. 남의 떡이 커보여서 그럴까?
첫째, 잘란트는 주정부의 산업육성 전략이 확실하고 구체적이었다. 앞에서 살펴본 3가지 영역에 실질적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둘째, 잘란트 주정부는 선택 분야의 연구개발과 연구소를 적극 지원하고 있었다. BT분야에서 지원하는 대표적인 연구소는 바이오의료공학연구소(IBMT)였다. 그 연구소는 초음파 현미경과 극저온 세포 저장 은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었다. 잘란트 주정부는 자체의 연구개발비를 대폭 지원함은 물론, 독일연방정부와 유럽연합(EU), 그리고 외국의 재원까지도 적극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KIST의 현지연구소인 KIST-유럽연구소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선택한 전략분야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려는 체계적인 활동이었다.
셋째, 잘란트 주정부는 선택분야의 성공을 위해 외국의 협력을 얻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금년 10월 중순에는 주정부의 경제장관이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에 오겠단다. 그 사절단에는 BT와 IT 등 전략분야의 과학기술전문가를 포함하겠단다. 그 때 자기네 사절단을 꼭 만나달라는 것이 경제장관이 필자에게 건넨 우선적인 부탁이었다. 그러나 선택분야가 아닌 영역의 국제협력에는 극도로 소극적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광주광역시와 체결한 과학기술협력 양해각서(MOU)는 실천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광주광역시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광(光)산업은 잘란트의 전략분야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필자는 독일을 떠나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전라북도가 잘란트보다 확고한 전략을 갖고 있을까? 전라북도가 잘란트보다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전라북도 어른들이 잘란트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지할까?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에 전라북도가 잘란트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 있을까? “Yes” 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은 필자의 모자란 생각일까?
/최석식(과학기술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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