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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눈뜬장님 이야기 - 유영대

유영대(고려대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심청전> 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있는 고전이다. 고전이란 완성된 당대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후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뜻한다. <심청전> 은 소설로 읽히거나 판소리로 불리거나 창극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심성에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온 작품이라는 뜻이다.

 

<심청전> 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것은 다음의 두 대목이다. 하나는 심청이가 눈먼 아비인 심봉사를 위하여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다. 심청이 물에 빠지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경험하게 한다. 창극 <청> 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은 천둥번개가 치는 인당수를 근사하게 그려낸다. 뱃머리에 선 심청은 눈먼 아버지가 아직 살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황주 도화동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바다에 떨어진다. 심청의 죽음의 순간을 그려내기 위하여 꽹가리가 쳐지고 징이 울리고, 격정적인 음악이 연주된다.

 

<심청전> 의 두 번째 절정은 심봉사가 심청을 만나 눈을 뜨게 되는 부녀상봉대목이다. 이 장면의 노래와 음악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질 때에 격정적 장면화와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봉사가 눈을 뜨기 직전에 음악이 휘몰아치고, 천지는 마치 파국을 눈앞에 둔듯 절망적으로 조여간다. 심봉사는 보이지 않는 눈을 부비면서 황후가 된 딸 심청을 향하여 "내딸이면 어디 보자"라고 절규한다. 심봉사가 그토록 눈을 뜨고자 하는 이유는 딸을 제대로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심봉사가 눈을 뜨면서 무대도 대명천지가 되는 것이다.

 

심봉사는 드디어 눈을 떠서 꿈에도 그리던 딸을 보게 된다. 그 벅찬 감동의 순간이야말로 듣는 이들을, 보는 이들을 환희의 정점에 올려놓는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도 기쁘고, 부녀가 상봉하는 것도 즐겁다. 심봉사가 눈을 뜨면서 처음 딸의 자태를 바라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이 장면에 이르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눈물을 흘린다.

 

봉사 눈뜨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는 멋진 노래를 부른 스티비 원더라는 가수가 있다. 이 가수는 어려서부터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특유의 비애감이 있다. 그는 마흔 아홉이 되던 해에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 병원을 찾아간다. 이 병원은 안과수술로 정평이 나있었다. 의사를 만난 스티비는 눈수술을 결심한다. 저명한 안과의사는 스티비의 눈을 살펴본 다음, 시신경이 너무 파괴되어서 개안수술을 하더라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15분 정도라고 대답하였다. 스티비는 15분이라도 좋으니 꼭 눈으로 볼 수 있게 달라고 의사에게 간청했다.

 

의사는 15분이라도 좋으니 수술을 해달라고 애원하는 스티비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무엇을 보기 위하여 그 15분을 선택했을까? 스티비는 "15분 동안이라도 사랑하는 딸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목소리로만 느껴왔던 그 딸을 진실된 모습을 보기 위하여 그는 수술을 결심한 것이다. 그후, 수술이 잘 되어서 과연 그가 사랑하는 딸과 제대로 상봉을 했는지, 그 후일담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눈을 뜨는 것이야말로 진실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길레 우리는 '눈뜬 장님'이라는 비유로서, 번연히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세상살이의 진정성을 모르는 이들을 야유하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단지 15분 동안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암흑으로 돌아가야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보아야할까? 무엇을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할까? 요즘 심난하게 돌아가는 판들을 보면 심봉사가 다시 눈을 감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유영대(고려대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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