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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동학농민혁명 재조명 본격화

기념사업회 22일 창립, 연구사업·유적 정비 등 전개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의 실질적 활동 근거지였지만 학계 연구가 뒷받침 되지 못하고 유적지마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던 김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재조명사업이 추진된다.

 

김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준비위원회(회장 고명역)는 22일 금산면 용호리 구미란마을 회관에서 마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창립대회 및 학술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창립식 및 현판 제막식을 가진 후 동학농민군 구미란 전투 희생자들애 대한 위령제와 3명의 발표자가 나선 가운데 학술강연회를 가졌다.

 

고명역 회장은 이날 대회사를 통해 "114년 전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뜻있는 민중들이 모였던 곳이 바로 김제땅 원평이다"면서 "이제라도 뭍혀 있는 사료를 발굴하고 장기적인 학술연구를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유적지를 정비하여 동학농민혁명사에 김제의 역사적 배경을 새롭게 기록하자"고 제안했다.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기조강연에서 " 김제 동학농민혁명은 모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륵신앙은 백제가 패망한 후 현실지배 정치권력에 한을 품은 저항세력을 집결시켰고, 미래불인 미륵부처의 품안에 의지하며 새로운 가치질서를 추구하는 혁명잠재세력으로 성장해 왔었다"면서 " 바로 그 영향권의 중심에 있었고, 보행교통의 요충지였던 원평장터는 동학농민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진원지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성미 원광대 교수는 "민초들의 이합집산지인 이곳에 전라도 대도회소가 있었으며 김덕명은 금구 대접주로서 전라도의 가장 큰 포를 관장했다"면서 " 1893년 3월10일, 금구원평취회가 원평장터에서 이뤄졌으며 이 때 반봉건 반외세에 대한 개혁의지가 다음해 고부 봉기의 화살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병학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은 "금산 구미란마을은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일본군의 신무기 화력 앞에 처참히 패퇴한 후 전라감영 전주를 내주고 설욕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라며 "동학농민혁명에 있어서 김제 금구·원평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의 실질적 행동을 위한 근거지였고 혁명의 거점지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학문적 위상을 정립하고 유적지마다 그에 걸 맞는 선양사업을 추진하며 자주·평등·대동의 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교육의 현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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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우 dwchoi@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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