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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로니'와 함께한 추석 - 이승수

이승수(진안우체국장)

 

지난해 상영되었던'로니를 찾아서'란 영화가 있다. 불법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와 평범한 소시민들과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영화는 우리나라가 이주 노동자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가를 극명히 꼬집는다.

 

배경은 도시 변두리 한 동네.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민의 생존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자율방범대가 구성되어 활동한다. 뒤숭숭한 속에서 주인공 '인호'는 태권도장 개관 1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는데 방글라데시에서 온 '로니'와 대련을 하게 되고 어이없게도 KO패를 당하게 된다. 로니는 도망가고 이때부터 인호의 퇴행적 행보는 시작된다. 가족도 태권도장도 돌보지 않고 오직 로니를 찾는데 올인하는 것이다. 자신이 방범대원하면서 노점상을 하던 로니의 가판대를 엎어버렸던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영화는 로니 의 친구 '뚜힌' 이라는 존재를 등장시키면서 극적인 효과를 더해간다. 인호를 줄곧 따라다니며 한국사회를 풍자하는데, "자격증을 가지고도 뜻대로 안 된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하자","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한국적 정서에 잽을 날린다. '코리아 드림'과 애환을 신랄하게 교차시키는 기법인 것이다. 삼겹살과 소주는 이 나라 서민들의 가치와 관련된 강한 메타포(은유)이기에 이방인의 기이한 발음속에서도 라포(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호의 기행(奇行)은 이들의 아지트를 고발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고 그사이 친구사이로 발전한 뚜힌까지도 추방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인공을 향한 뚜힌의 일갈이 오랜 메아리로 남는 것은 왜일까. "'로니'는 찾아서 뭐할 라고~"

 

2009 추석을 맞아 진안군청에서는 200여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고향에 정 보내기」운동을 전개하였다. 국제특급 우편요금을 전액 지원하는 초유의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다. 다문화센터에 모인 우리의 새댁들은 주로 전기밥통, 진공청소기, 드라이기 등 전자제품을 들고 왔다. 한편으로 형편이 어려운 쪽은 제공된 중량 5kg을 채우지 못해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진안우체국에서는 즉시 내용품 채워주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직원들이 수집한 옷가지며 고객 사은품으로 비치중인 주방용품, 라면, 김 등으로 상자를 채우니 아주 근사한 선물 꾸러미가 만들어졌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는 '로니'의 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 중에는 나이 많은 신랑과 우체국에 와서 부부싸움을 하던 월남 댁도 있었다. "당신이 해준 것이 머 있다고 그래" "저것이 한국말은 늘어 가지고 그냥" 황급히 출구를 빠져나갔던 그 나이 많은 신랑의 미소까지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군수님! 내년 설날에도 추석에도 이렇게 뜻 깊은 행사 계속하실 거지요? 어려운 사람들 내용품은 우체국에서 맡겠습니다." 비약인가. 이 시간 방글라데시에서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로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인지상정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시린 가을 아침이다.

 

/이승수(진안우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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