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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거리에서] 봄날

폭발할 것 같은 젊음의 열기가 영화의 거리에 넘친다. 오랫동안 움츠리고 억눌린 봄이 젊음의 심지에 불을 당긴다. 훈훈한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이 고와서 나도 하루 종일 햇살 속을 돌아다닌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봄날은 충분히 영화적이다. 행복해서 죽겠다는 듯, 예쁜 종아리를 드러내 놓은 아가씨들과 청년들의 씩씩한 발걸음이 지축을 울린다. 거리는 영화 세트 같다.

 

자본의 거리에서 여자를 빼면 남은 게 없다는 김수영의 말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도시의 거리에서 사랑만이 자연이다. 자본과 인간성이 치열하게 싸우는 거리에서 인간성의 승리는 연애 뿐이다.

 

한성호텔에서 교보문고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차 없는 거리에 서 있는 한그루 새 잎 피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봄 햇살을 받은 나뭇잎 위에서 햇살이 거리로 흘러내린다. 거리에서 나는 나이를 잃은 현실주의자가 된다. 인파가 파도가 되어 거리에 출렁인다. 이 세상 수많은 인생들 중에서 영화는 늘 한 사람의 생을 앵글로 잡아다가 화면 속에 풀어놓고 그의 잡다한 인생사를 극적으로 펼쳐준다. 사랑과 욕망과 절망과 슬픔과 이별을 그리다가 대중 속으로, 저 인파 속에다가 다시 방생한다.

 

주인공은 인파 속에 섞이고 우리들은 극장 문을 나선다. 생은 때로 거리에서 버림받아 슬프고 쓸쓸하다. 극장 문을 나서며 생은 홀로 외로워서 아름답고 새로 빛난다.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무는 두 가지에서 세 가지로 그리고 네 가지, 다섯 가지로 나뉘고 갈라지고 그리고 무수해진다. 그리하여 가장 여린 실가지 끝에서 새 잎은 피어나고 그 나뭇잎이 오월의 햇살 속에서 사랑을 더듬어 찾는다. 햇살 속에 눈이 부시게 하늘거리는 나뭇잎, 그러나 아직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랑의 짝이 없는 사람들은 연두색 나뭇잎이 초록으로 건너가기 전에 사랑을 찾아라.

 

다시 메가박스 앞 공연장 앞에 서 있다가 '4대강 뻥 튀기'를 파는 사람들 곁을 지난다. 영화는 과거를 오늘로 가져와 나의 현실이 되고 오늘을 거울에 비추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영화는 또 미래를 오늘로 미리 불러와 오늘의 삶을 질타한다. 영화로부터 멀어지면서 사람들은 시대를 놓치고 초라하게 늙고, 다 쓸데 없는 자루처럼 낡고 남루해진다. 영화는 늘 치열한 나의 일상이다.

 

/김용택(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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