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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보배 창업주 문병량은 누구

'무에서 유 창조' 강조한 향토기업인…상의 회장·국회의원 등 지내며 지역경제 발전에 한평생 바쳐

국회의원을 지낸 문병량은 나중에 기업인이 정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desk@jjan.kr)

8세 때 아버지를 잃고 조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문병량은 1996년 2월11일 63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거친 세상을 거침없이 살다간 기업인이었다. 비록 그가 사업을 확장하던 중 금융권의 자금 회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일생을 바쳐 일군 보배그룹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보배소주는 전북의 큰 자산으로 남아 도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180㎝의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문병량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인물이었다. 항상 시간관리에 철저했던 그는 매일 5시 전에 어김없이 기상해 하루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직원과 거래처 등에 전화를 돌려 업무를 조율하거나 지시하고, 면담 약속을 정하는 일이 습관이 됐고, 이같은 전화업무는 아침 6∼8시 사이에 이뤄졌다. 이같은 그의 습관은 거래 상대방이 이동하기 전에 미리 조율해야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일도 일사천리로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사장한테 달려드는 놈이 나중에 진짜 내식구가 된다"며 비판적이고 적극적인 인재를 중용했다. 대화중에 속담을 잘 섞어 쓰는 등 재치있는 말씨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마법의 소유자였다.

 

 

그가 비록 거액의 금융 채무 때문에 그룹을 잃었지만, 사채는 멀리했다. 그는 "사람도 기계도 쉬어야 돌아가는데, (사채)이자는 분분초초 잠도 자지 않고 자란다"며 사채를 경계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없었던 그는 항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정신을 강조하며 살았다.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결과적으로 문제의 시작이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결국 기업까지 잃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정권 실세의 재선 요구를 물리친 것은 기업인이 정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보배그룹 회장으로서,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전북 경제발전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하다 간 향토 기업인이었다. 그는 자녀들에게 기업 자금을 빼돌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기업은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그에게 그저 속설일 뿐이었다. 기업인으로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중수교 전에 중국에 진출, 베이징에 '북경 보배원'을 설립해 운영한 것은 문병량 사장의 사업가적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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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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