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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41)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①

가사 적극적으로 표현한 다성음악 시대…절대권력 '교회음악'의 끝없는 추락

 

서양음악에서 일반적으로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마도 17세기 바로크(Baroque)시대 이후의 음악일 것이다. 중세음악, 르네상스 음악에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이 있지만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중심이 기독교이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음악 거의가 교회음악이었다. 음악을 작곡하는 준거인 음 체계도 우리가 알고 있는 장·단조 조성이 아닌 교회선법이며, 또 2성이면 2성, 3·4·5성부음악이면 3·4·5성부가 다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다성음악 구조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반영하는 인간적인 예술이 꽤 강했지만 음악에서는 가사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일 뿐 음악의 짜임새는 여전히 정교한 다성음악 시대이었다. 15세기 팅토리스(Johannes Tinctoris, 1435경~1511)는 당시의 음악을 설명해주는 책 「대위법의 기술(Liber de arte contrapuncti)」(1477)을 저술하여 당시의 다성음악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16세기에는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차를리노(Gioseffo Zarlino, 1517~1590)가 「화성의기초(Le istitutioni harmoniche)」(1558)라는 책을 써 당시의 음악을 설명해 주고 있다.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교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죄를 짓고서도 돈을 주고 사면 죄가 없어진다는 증명서) 판매를 반대하는 95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대문에 붙인 것이 1517년 10월 31일! 이후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되었고 루터가 주도한 루터교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음악은 코랄(chorale)이라는 회중찬미가로서, 종교적 예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함께 쉽게 부를 수 있는 찬미가였다. 또 다른 개혁은 칼뱅(Jean Calvin, 1509~1562)에 의한 개혁이니 칼뱅교는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즐거워질 수 있는 장식이나 그림·악기·다성음악 등은 아름다운 느낌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다며, 다성음악을 아예 금하였다. 칼뱅은 오로지 성경, 특히 시편만을 노래해야 한다며 시편을 운문으로 고쳤다. 박절적 시편가이다. 그럴지언정 카톨릭 교회음악은 여전히 각 성부가 다 똑같이 중요한 다성음악 형태이었다.

 

르네상스시대에도 교회에서 허락한 교회선법 8선법 외에 장·단조 음계와 같은 음 체계 선법인 이오니안선법 (Ionian mode, 다장조와 같은 음체계)과 에올리안선법(Aeolian mode, 가단조와 같은 음체계)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오니안, 에올리안선법은 음 체계가 세속적 속성이 강하다며 사용을 못하게 했다. 르네상스 말기쯤 음악가들은 교회선법으로 작곡을 하면서도 선율의 아름다움과 화성조화를 위해 임시표(Musica ficta)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장·단조와 같은 음체계가 자주 나타나게 되며 조성음악(Tonal music)시대가 되는 것이다. 17세기 말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 등 많은 음악가들은 장·단조 음악으로 작곡한다. 프랑스 작곡가이자 이론가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는 「화성론(Traite de l'harmonie)」(1722)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공식화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장·단조 음악체계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바로크시대의 조성음악이다.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한 사회적 변동과 유럽 각국에서의 중앙집권적 절대군주제의 등장으로 교회의 힘이 약화됨에 따라 음악활동의 중심은 왕이나 제후의 궁정으로 옮겨지게 된다. 따라서 음악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 외에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르네상스음악에서 바로크음악으로 변하는 음악의 중심지는 베네치아(베니스)이었다. 베네치아 공국의 중심인 성 마르코성당은 11세기에 세워진 성당으로 베네치아의 모든 정치·문화행사가 그 교회와 교회 앞 광장에서 행해졌다. 성 마르코 성당의 음악은 베네치아 공국이 직접 관장하면서 음악을 위한 비용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성 마르코 성당의 성가대장이나 오르가니스트 자리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리였고, 따라서 성 마르코 성당의 음악감독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였다.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초빙된 베네치아 악파의 창시자인 빌레르트(Adrian Willaert, 1490~1562)를 시작으로 차를리노와 오르간 연주자인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li, 1510~1586), 조카인 지오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li, 1553~1612),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 1567~1643)등에 의해 성 마르코 성당의 음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베네치아 악파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유럽 각지에서 음악가들이 오게 되고 이곳에서 배우고 간 음악가들에 의해 베네치아 음악, 바로크 음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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