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이 작곡가 로시니의 본래 의도를 살리려고 노력한 덕분이다. 로시니의 '신데렐라'에서는 의붓어머니 대신 의붓아버지가 등장하고 호박마차와 요정 할머니 대신 왕자의 스승이 나타나 신데렐라를 도와주는데, 이는 오페라 무대에 마법이 등장하는 것을 유치하게 여긴 당시 로마 관객의 취향에 따른 것이었다.
동화 '신데렐라'의 단순한 줄거리와 교훈을 예상하고 온 관객들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반전을 체험할 수 있었다.
21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신데렐라(La Cenerentola)'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관객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보기에도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초연 당시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교훈극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가족 오페라'를 표방한 제작진은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어린이 관객을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공연이 유치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
첨단 조명기술과 영상기술을 동원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희극적 과장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이 제작진이 택한 성공적인 해결책이었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못지않은 예술적 완성도와 재미를 지니고도 '신데렐라'가 자주 공연되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성악가들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데다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성철이 지휘한 필하모니아 코리아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의 주역가수 및 합창단과 깔끔하게 호흡을 맞췄다. 랩(rap)을 연상시키는 정신없이 빠른 패시지에서 지휘자의 치밀한 박자감각은 더욱 빛났다.
신데렐라 역을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외모와 음색, 연기력 면에서 다른 선택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역이었다. 고난도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데는 조금 힘이 부쳤지만, 안정감 있는 중저음과 선명한 고음은 신데렐라의 대담하고 강인한 성격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테너 라미로 왕자 역을 맡은 베를린 도이체 오퍼의 주역가수 강요셉은 특유의 미성과 유연한 가창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테너의 시련'으로 불리는 2막의 어려운 아리아 '그래, 그녀를 찾고야 말거야(Si, ritrovarla io giuro)'를 완벽한 기교와 파워로 불러내 뜨거운 갈채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처음으로 만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그녀 눈빛의 부드러운 광채(Un soave non so che)'는 두 주역가수와 오케스트라의 서정적 표현력이 극대화된 명장면이었다.
왕자의 시종 단디니 역을 노래한 바리톤 공병호 역시 첫 등장한 아리아에서 고난도의 장식음 기교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할에 어울리는 음색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손꼽을 만한 장면은 신데렐라의 의붓아버지 돈 마니피코(바리톤 장성일)가 딸들에게 당나귀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리아 장면. 장성일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가창, 종탑을 빙빙 도는 흰 당나귀 영상, 그리고 무대 위쪽에서 웃으며 지나가는 당나귀 모형까지 모든 장치가 장면의 희극성을 극대화했다.
무대디자이너 김종석의 무대는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백색 격자 벽에 조명과 영상을 이용해 신데렐라 집의 문과 창문을 만들어냈고 계속 위치와 크기를 바꾸며 열리는 창문에 가수들을 등장시켜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회전무대를 이용해 후면에 설치한 왕궁의 빛나는 벽과 모던한 무대 디자인 및 색채 역시 환상적인 효과를 냈다.
가수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 이지나와 임춘길의 세심한 연출도 극의 희극적 효과를 더욱 상승시켰다.
지역 공연장의 자체 프로덕션으로 이처럼 놀라운 완성도를 보인 이번 공연이 단 2회로 끝나지 않고 다른 지역 공연장으로 연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2일 5시 공연이 한 차례 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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