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에 얽매이지 않은 '참다운 광대'
박동진은 문제적인 소리꾼이었다. 대중으로부터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소리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니리 광대'라느니, '자작으로 하는 소리'라느니 하는 등의 뒷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박동진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져가는 판소리를 다시 되돌려 놓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다. 1968년 최초로 다섯 시간에 걸친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하여, 완창 발표회라는 양식을 소리꾼의 기량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자리잡게 한 것이 박동진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박동진의 판소리를 듣고 판소리에 관심과 흥미를 갖기 시작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2003년 별세할 때까지 레슨에 매이지 않고 공연 활동을 한 참다운 광대였다. 레슨에 매달려 공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요즈음의 소리꾼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물론 그래서 그는 많은 제자를 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박동진이 명창이 아닌가? 나는 요새 세상에 박동진 같은 명창 두세 명만 더 있어도 소리판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흥보가>
이제 박동진 명창이 별세한 지도 7년이 되었으니, 차분히 그의 공과를 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우선 박동진 판소리의 특징과 장점부터 알아보자.
박동진의 판소리의 특징으로는 가장 먼저 재미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청중들을 한 시도 놓아두지 않고 판소리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을 그의 판소리는 가지고 있다. 판소리가 중요한 문화유산이면 뭐하는가? 판소리가 공연예술이면서 흥행예술인 한 일단 청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박동진의 판소리는 일단 청중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자력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 자력의 핵심은 재미이다. 그 재미는 풍성한 입담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풍성한 입담을 가능케 하는 것이 즉흥성이다.
박동진은 즉흥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단가를 아예 즉석에서 창작해서 부르기도 한다. 1984년 7월이었다. 전주에서 박동진의 <흥보가> 공연이 있었다. 박동진이 막 단가를 시작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달 전 저녁에 자는디, 전화벨이 울리더구나. 누군가허고 받어보니, 전주 계시는 000 교수님이, '여기 전줍니다.' 허시면서 전화를 허시는디, 전주에서 교사 여러분이 전북대학에서 여름방학 동안에 공부를 허시는디, 와서 단가 자리나 한 번 해달라고 해서, 응낙을 허고 오늘을 기다리는디……" 어쩌고 하는데, 이것은 전래 단가가 아니라, 완전한 즉흥 창작곡이었다. 단가를 부르다가 한두 구절쯤 즉흥적으로 첨가하는 일은 보통 소리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박동진밖에는 없었다. 흥보가>
소리가 그럴진대 아니리에서는 말할 것이 없었다. 박동진은 판소리를 부르다가도 고수와 말을 주고받는다. 상스런 욕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해댄다. '시러베 아들놈'이니, '썩을 놈이니', '빌어먹을 놈', '급살맞을 놈' 같은 욕을 무시로 한다. 오죽하면 시퍼렇던 5공시절 전두환 앞에서도 "저 머리 벗거진 놈"이라는 욕을 해서 주위 사람을 긴장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음담패설을 장황하게 이어가기도 한다. 젊은 여자들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음악은 정해진 형태가 없고, 무대 언어는 난잡하다고 비난을 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래 판소리 광대는 즉흥적으로 노래와 이야기를 엮어가던 재담꾼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박동진의 모습은 판소리꾼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박동진은 재담꾼으로서의 판소리 창자의 본래 모습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이렇게 소리판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아무래도 재담으로서의 판소리는 박동진에서 끝난 것 같아서 답답하다. 판소리 해설을 하면서 텅빈 객석을 보고 있노라면 박동진 같은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어도 이렇게 썰렁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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