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의 욕이 늘 그리운 이유
박동진은 연습벌레였다. 박동진은 국립국악원에 근무하면서 날마다 새벽에 나가 소리 연습을 했다고 한다. 박동진이 부를 수 있는 판소리는 종류도 많았다. 판소리 전승 5가 외에도 창이 사라진 판소리 중에서 <변강쇠가> <배비장전> <강릉매화타령> <옹고집전> <숙영낭자전> 을 불렀고, 성서 판소리를 창작해서 불렀다. <유관순전> 과 <성웅 이순신> 도 창작 판소리로 불렀다. 역사상 박동진만큼 많은 레퍼토리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 많은 소리들을 하려면 아닌 게 아니라 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동진은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는 대로 바로 소리를 할 수 있었다. 성웅> 유관순전> 숙영낭자전> 옹고집전> 강릉매화타령> 배비장전> 변강쇠가>
전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한고우회> 라는 단체에서 박동진을 초청해 공연을 하게 되었다. 장단은 <대한고우회> 회원들이 맡았다. 행사 주최측에서는 박동진을 초청한 다음 공연장에서 바로 어디를 불러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박동진은 불러달라는 대로 아무 소리나 막힘없이 불렀다. 무대에 한 번 서려면 며칠씩 연습을 해야 하는 요즈음의 소리꾼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변강쇠가> 녹음을 할 때도 그랬다. 박동진을 만나서 <변강쇠가> 녹음을 하자고 했더니 바로 좋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면 언제 녹음을 할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무 때라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날짜를 잡고 녹음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세 시간이나 되는 <변강쇠가> 를 중간에 한 번 쉬고는 한 번에 녹음을 마쳐버렸다. 물론 사설집을 보지도 않았다. 한 번 쉰 것도 고수가 장단이 삐어 한 번 쉰 것이었다. 그 때가 1990년 8월이었으니, 박동진이 일흔다섯 되던 해였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기 한 몸 가누기도 힘든 나이가 아닌가? 그런 노인이 단번에 세 시간짜리 녹음을 마칠 수 있었던 저력은 오직 연습, 자나깨나 연습뿐이었을 것이다. 변강쇠가> 변강쇠가> 변강쇠가> 대한고우회> 대한고우회>
이런 박동진도 목이 쉬어 소리를 못할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것도 전주에서의 공연 때였다. 무대에 나왔는데, 목이 꽉 쉬어 소리가 잘 나오지를 않았다. 박동진은 소리를 하다가, "이 놈의 목이 쉬어서 나오지를 않네!"하면서 노래를 계속했다. 그날의 공연은 소리보다는 아니리에 치중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박동진은 생전에 전주 무대에 서면 늘 두 가지를 말했다. 그는 자기를 전주 사람으로 봐달라고 했다. 물론 박동진의 고향은 전주가 아니다. 1916년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본인이 확인해 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전주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가? 그것은 자신의 소리를 제일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전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충청도에도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판소리 청중들이 많았다. 이동백과 김창룡이라는 걸출한 명창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충청도는 판소리의 전승지에서 이탈하였다. 박동진 자신은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명창이 되었지만, 고향에서는 그 진가를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박동진은 전주를 좋아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박동진은 또 자신을 '광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스스로도 자신을 '광대'라고 했다. '광대'라는 명칭 속에는 온갖 천대와 그 천대로 인한 설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 내내 광대는 최하층 천민으로서 온갖 천대 속에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술가로서 판소리라는 뛰어난 예술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광대들의 자부심이다. 소리꾼들은 보통 광대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요즈음은 그래도 판소리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광대라고 하면 바로 천민이라는 말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동진은 광대이기를 원했다. 자기가 광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겠냐고 했다. 그러니까 박동진은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으로 광대로 불러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온갖 부정적인 의미가 따라다녀도 박동진은 자신이 하는 판소리에 자신이 있었고, 그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동진이 별세한 지도 벌써 7년이다. 박동진과 같은 명창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서 그런지, 박동진의 욕이 늘 그립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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