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 연두교서로 본격화…총주주 296명 규모…1969년 12월 10일 문열어
전북은행이 설립된 직접적인 단초는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언급한 연두교서에서 비롯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지역적 자본을 집대성해 그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내자동원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지방은행의 설치를 검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향토은행의 고고성이 됐다.
당시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한국경제의 실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1962년부터 실시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22.6%라는 의욕적인 계획투자율에 비해 실제 실적은 15.1%에 불과했다. 이는 당시 자원동원능력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했던데다, 재원조달과 관련해 해외부문과 정부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민간 투자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될수록 지역간 발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당면과제도 두드러져갔다. 결국 정부는 민간투자를 유도하고 지역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개발 금융체제의 확립이 절실하다는 대안을 찾게 됐다.
사실 정부의 절박함외에도 지역경제계의 향토은행에 대한 갈증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성장의 추동력으로 공업화를 강조하면서 경제개발은 일부 특정도시에 편중됐던게 사실. 이에 따라 특정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은 금융경색에 시달렸고,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극심해졌다. 당시 한국의 금융구조는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으로 구축한 탓에 지방에서 조성된 자금이 지역기업에 환원되지 않은 채 서울지역 기업들로 유출되는 기현상이 연출됐고, 이로 인해 지역업계의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사실 지역경제계에서는 전북은행의 창립에 앞서 향토은행을 설립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64년에도 지태순씨를 중심으로 가칭 호남은행의 설립을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졌었다. 당시 이정우 지사가 지역경제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측에 향토은행 설립을 적극 건의했지만 구체적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처럼 지지부진하던 향토은행 설립 논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계기로 새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
연두교서이후 전북도지사, 3개시 상공회의소 회장, 전북출신 국회의원과 실업인 등 48명은 전북개발을 위한 은행설립추진위를 구성하고, 장경순 국회부의장을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들은 또 1969년 3월 10일부터 4월 1일까지 다섯차례의 간담회를 갖고 '납입자본금은 2억5000만원(재일교포 1억원·재경실업인 1억원·전북영세자금 5000만원)으로 하고, 도민 1인주1주 갖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전 도민이 참여하는 은행으로 만들자'는 데 중지를 모으는 등 향토은행의 뼈대를 세우는 데 주력했다.
뒤이어 같은 해 4월 17일에는 전북도청 상황실에서 전북은행 설립준비위가 발족됐고, 5월 16일에는 서울 청진동의 한 음식점에서 제1차 발기인회를 가졌다.
발기인은 회장인 엄주상 전 상업은행 전무이사를 비롯해 김현성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고판남 한국합판㈜ 대표이사, 이갑동 이리상공회의소 회장, 최현식 신흥건설㈜ 대표이사, 김상홍 ㈜삼양사 대표이사, 조우동 전주제지㈜ 대표이사, 임대홍 미원㈜ 대표이사, 강정준 백화양조㈜ 대표이사, 송갑섭 건설협회 전북지부장, 황태문 태흥광업사 회장 등 11명이었다.
제1차 발기인회를 통해 '신생 은행의 수권자본금은 3억원으로 하고, 창립비용의 한도는 300만원, 납입자본금은 당초의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축소조정한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발기인들은 10월 23일까지 다섯차례 회의를 갖고, 은행장 인선을 위한 7인소위를 구성한 데 이어 초대 엄주상씨에 이어 최주한 전 산업은행 이사를 후임 발기인회장으로 선출했다.
창립총회는 같은 해 11월 10일 총주주 296명 중 77명(총 20만주의 주식 가운데 15만6079주)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최됐다. 총회를 통해 최주한 발기인회장이 초대 대표이사(은행장)를 맡게 됐다. 초대 전무이사는 김지완 전 산업은행 지점장, 상무이사에 김길동 전 은행감독원 검사역, 이사는 권병로 전 제일은행 차장, 비상근 이사는 지태순·강정준·김문갑씨, 상임감사는 엄병근 전 기업은행 지점장, 비상근 감사는 김상홍씨가 선출됐다.
본점은 현재의 새보건약국이 들어선 전주시 전동 2가 135번지에 설치하고, 전주에 예금취급소 2곳, 군산과 이리에 각각 지점을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마침내 전북은행은 1969년 12월 10일 문을 열었다. 창립당시 임직원수는 상근 5명 비상근 4명의 임원외에도 책임자 10명, 남자행원 25명, 여자행원 14명 등 모두 66명이었다. 전북은행의 창립은 지방은행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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