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 자료 분석하기
〈제시문 1〉 가족 윤리의 사회적 확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자유주의 사회이다. 자유주의에서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인간'은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압력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이고, '사회'는 서로의 간섭에서 벗어나 각기 자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사회는 자칫하면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존재들의 집합체로 전락하기 쉽다.
원래, 자유주의는 서양의 중세를 거쳐 근대 직전까지 지속되어 오던 군주, 귀족, 승려 계급의 부당한 횡포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자유의 확산과 더불어 개인들은 국가 권력이나 종교적 억압 그리고 특권 계급의 부당한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전개에 따른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원래의 자유주의가 지니고 있던 긍정적인 면모는 쇠퇴하고, 그 대신 자기 이익만을 주장하며 공동체의 복지에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개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자유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가 전제로 하고 있는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인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요구된다.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자유주의가 중시되는 개체적 인간관과는 달리, 인간을 그가 속한 공동체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유기체적 존재로 파악한다. '나'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분리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얻어진다. 또 자유주의에서 상정하는 원자적이고 고립적인 인간관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언제나 개인을 주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여 왔다. 우리 전통에서 '나'는 고립적 존재가 아니라, 누구의 아들, 누구의 친구, 누구의 이웃이라는 '관계'를 통하여 파악되었다.
우리 전통 윤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유학에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도덕적 감정을 점점 먼 관계에까지 확산시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친기친(親其親)'이란, 자신의 혈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고, '장기장(長其長)'이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의 어른에 대한 공경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인격적 접촉을 통하여 우리는 기초적인 도덕적 가치를 배우게 되고, 이러한 도덕적 가치를 점점 먼 관계에까지 확대시켜 나아갈 때 사회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면서 남의 부모를 사랑하기란 어려우며, 자신의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어른을 공경하게 될 리는 만무하다. 사랑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부단히 사랑이라는 도덕 감정을 친구와 이웃, 그리고 낯선 사람과 이방인에게까지 확대하여 나아갈 때에 우리 사회는 좀더 따뜻하고 열린 사회가 될 것이다.
- 전통윤리 교과서
〈제시문 2〉 상상의 가정
가정 속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성인이 되어 또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여겨 온 우리는 가족과 가정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자 척박한 사회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안식과 활력을 주는 원천으로 기억한다.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기는 가정, 우리는 과연 이러한 가정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는가?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고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해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뿐이리"
19세기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는 우리의 애창곡이기도 한다. 1970~80년대 어린이 노래경연대회의 최다 선정곡이기도 한 이 노랫말은 우리에게 가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포근한, 따뜻한' 등의 형용사로 수식되는 가정에 대해 중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가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고, 사랑으로 감싸 주는 곳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며, 가족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서로 아끼고 격려해준다"고. 안정감과 친밀감,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가정에 대해 은유는 직장, 종교공동체, 심지어는 스타들의 팬클럽에서 표현될 정도이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정은 삭막한 사막에 숨겨져 있는 시원한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참된 안식과 진실된 사랑과 위로와 동정과 마음의 상처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많은 사회와 국가는 튼튼하고 강합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안식도 사랑도 위로도 그리고 마음의 동정도 상처도 치료받을 수가 없고 피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조용기 목사 설교, 1999)
"저는 그분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조건없이 저를 주고 무슨 일이 생겨도 믿어줘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잖아요"(배용준 2004-4 일본방문인터뷰)
- 이숙진, 해체냐 복원이냐, 기로에 선 가정과 가족
〈제시문 3〉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가족 사회에서 탈주하여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일이다. 가족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모든 부담과 책임을 떠안고 있고, 또 그것이 가국주의의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탓에, 우리에게는 시민사회가 아니라 가족 = 사회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가족사회'가 존재한다.
"가장 튼튼한 울타리는 가족입니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있었다. 지하철 빈 의자에 쓰러져 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가족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기사 제목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 말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부감은 커녕 너무도 당연한 말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가족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감정은 그야말로 깊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며, 국가의 폭력에 아무런 의심과 저항도 없이 철저히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가장 튼튼한 울타리는 가족"이라는 말은 개인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마지막 보루로서의 사회의 이미지를 가족의 이미지로 대치시킨 교묘한 바꿔치기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가족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다시 말해 가족이 가족'주의'로 둔갑하는 것이다. 이 글귀가 당당한 시민사회의 것으로 되려면 "가장 튼튼한 울타리는 사회입니다"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 = 울타리는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 국가가 공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운운하며 가족과 아버지에게 떠넘기는 것은 가족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주의는 명백히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아버지(어머니)라는 한 인간의 어깨에 모든 생존의 짐을 떠넘긴다. 그 한 인간은 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하루 종일 일터에서 떠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이 병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은 가족이 병들어 있다. 바로 가족이라는 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족이라는 편집증이다. 편집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여기서 멈추지 말라, 멈추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이라는 편집증은 우리 사회가 편집증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생긴 병이다. 인터넷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너도나도 휴대폰을 갖게 된 현상의 저 밑바닥에서 사회의 편집증이라는 강이 지금 홍수를 이룬 채 흘러가고 있다. 이 홍수를 막지 못하고 사회의 편집증을 치유하지 못하며, 사디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들고 말 것이다. 머물러 있는 채,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상대방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앞으로 뛰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 이득재,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제시문 (가)에 나타나 있는 전통윤리 속에서의 '가족'의 의미를 파악해보고, (나), (다)에 드러난 가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근거를 들어 논하시오.(900자 내외)
* 보낼 곳; yimza@daum.net
2. 면접 논제
가족의 가치는 개인의 희생 위에서 진정 바로 설 수 있을지, 개인의 행복추구가 가능한 뒤에 가족도 순조롭게 유지되는 것인지 토론해 봅시다.(면접은 주변 학생들과 해보기 바람)
■ 쟁점 자료 비판적 읽기
〈제시문 1〉
농업 사회인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봄철의 모내기와 가을철의 추수, 그리고 홍수와 가뭄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하여 공동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러한 공동작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협동과 유대라는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다. 공동체적 삶은 우리 겨레의 생활양식이었고, 나눔과 베품의 덕은 우리 선조들이 열악한 경제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산업화속에서의 대립과 투쟁의 모습이 나타날 때 기업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그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IMF 경제 위기 때를 보자. 노사 관계를 피지배와 지배의 관계 또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공생 관계로 보아, 협동과 유대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켰던 것이다.
〈제시문 2〉
가정의 이상적인 기능이 "따듯한", "포근한" 등의 수사로 표현된다면, 이상적인 형태는 핵가족 모델이다. 일일드라마와 하루에도 몇 백편씩 방영되는 광고 등은 단란한 핵가족이 정상적임을 우리에게 주입시킨다. 근대적 핵가족은 "부부관계를 기초로 하여 부모자녀관계, 형제 등 소수의 사람을 주요한 구성원으로 하며, 성원들은 서로 깊은 정서적 끈으로 연결된 1차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 가족형태는 현대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제시문 3〉
돈 벌러 떠났던 아버지의 무거운 두 어깨에 70년대부터 강행되었던 경제개발은 사회적 부의 균등한 분배는 커녕 '고개 숙인 남자'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고, 가족의 생존권을 담당하던 남자들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물론 실업자의 숫자가 3백만 명을 넘던 시절에 여자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 안으로는 자식 양육을 하고, 밖으로는 없어진 가정 수입을 채우거나 보충하기 위해 이중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가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남녀를 떠나서 국가의 공공성과 사회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모든 부담으로부터 가족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우리는 가족이 사회나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전적으로 떠맡고 있는데도 이것을 국가의 폭력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어떤 운명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령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해고된 것을 팔자 타령으로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 쟁점 확대하기
1. 찬성
가. 인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족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장 자연스러운 가족형태인 것이다. 가족형태를 통해 사회를 원활히 유지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제도는 가장 자연스럽고, 완성된 가족형태임은 분명하다.
나. 현 사회는 가족이 해체되는 사회이다. 이에 따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동거부부, 재혼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교육에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부모가 끝까지 책임을 지며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다. '정상 가족'의 모델이 필요하다.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도덕규범이 필요하듯, 가족도 '정상 가족'의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출산 및 이혼급증의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고유의 윤리적 미덕을 지켜야 할 때인 것이다.
라. 현대 가족의 위기는 서양의 이기주의적 사고의 결과이다. 가족은 이익집단이 아니다. 영원한 친밀감을 제공하는 것이 가족인 것이다. 어떤 이익보다 소중한 가족의 가치가 사회적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 해체되어서 겪는 사회적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다.
2. 반대
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가족이란 것도 하나의 이데올르기이다.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해도 사회의 발전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신화를 통해 가족을 이루지 못한 피지배계층에 대한 지배와 비난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나.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다는 것을 위기로 보는 것은 기만이다. 가족의 변화는 현대사회의 한 특징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이 아동복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때이다. 빈곤한 가정의 경제적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될 것이지 위기로 파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 현재의 다양한 가족 유형은 현 시대의 산물이다. 프랑스를 보라. 결혼이 늘지 않아도 인구는 줄지 않고 있다. 제도가 변하듯이 이제 사람도 변하고 있다. 거기에 맞추어 가족 제도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라. 과거의 가족제도는 후손을 갖는 것은 재산증식의 수단이었으며,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가족보다는 합리적 선택을 취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한다. 다양한 가족의 인정을 통해 개인의 복리후생과 법적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는 시기이다.
■ 쟁점 기출문제
1. 논술 : 2006학년도 서강대 수시 2 논술 문제
[문제 1] 제시문 [A]는 역사의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A]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B]의 견해를 보완하거나 비판하시오.(400~500자)
[문제 2] 제시문 [D-1]과 [D-2]에 나타난 공통적인 문제점에 대해 논하시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게 된 이유를 [C-1]과 [C-2]를 참고하여 기술하시오.(400~500자)
2. 면접 : 2008학년도 가톨릭대 정시 법대 문제
[문제] 세계화 시대의 이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가?
(인문, 국제계열)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