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주 도지사가 지난 2006년 선거 공약으로 내건 전북문화재단이 5년 째 논란만 거듭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도지사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이해관계인들의 갈등 구조 속에서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09년 관련 조례가 제정된 데 이어 지난해 본예산 편성까지 했던 전북도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도의회는 '여론수렴 후 해법제시'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수년째 논란만 거듭하고 있는 전북도는 또다시 "쟁점 정리가 미흡하다"며 "다른 지역의 사례를 더 검토한 뒤 내부검토와 토론을 거쳐 설립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비생산적 논의만 거듭한 채 결정을 못하고 있는 전북문화재단 문제의 걸림돌과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본보는 두차례에 걸쳐 이를 다룬다. / 편집자 주
△ 전북도와 도의회의 조변석개
2006년 선거 때 김완주 지사가 문화재단 출범을 공약으로 제시한 뒤 간담회만 46차례나 했던 전북도는 2009년 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2010년에는 본예산 편성까지 마쳤으나 이 예산안이 도의회에서 삭감된 후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차일피일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전북문화재단의 문화시설 통합범위와 출범시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2011년 6월)까지는 방향을 설정할 계획이다."
김완주 지사는 지난해 10월 도의회에서 백경태 의원(무주)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도지사는 도와 재단간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타 시·도의 사례와 직무분석을 통해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도는 TF를 가동하면서도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작 추경에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도는 또다시 "더 많은 비교검토가 필요하다"며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처음엔 도지사가 문화재단을 띄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지난해부터 그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참모들도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 2009년 6월 문화재단 설립 기본계획 수립에 이어 2010년 10월 출범 로드맵을 표방했던 전북도의 태도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을 잃은 도의회의 행보도 도마에 올랐다. 2009년 조례 제정 당시 사실상 모든 입장이 다 결정됐으나, 지난해 7월 제9대 도의회가 출범했다는 이유로 재검토에 들어갔다. 타 시·도 방문, 토론회를 가진 도의회는 새로운 구상안을 제시한다고 했으나, 1년 가까이 감감 무소식이다.
도의회 문화관광건설위원회(위원장 배승철·이하 문건위)는 올들어서도 문화재단 관련 논의를 하지 않았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전문성 부족과 안이한 태도가 문화재단 출범을 가로막고 있다"며 전북도와 도의회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 전북문화재단 출범하면 문제 많나
전북도나 도의회가 문화재단 출범의 걸림돌로 제시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도지사가 이사장을 맡을 경우 옥상옥 우려가 크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통합에 따른 공룡화, 지역 문화계 밥그릇 싸움 가열화 우려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지역 문화계에서는 전북도가 이러한 우려를 하면서 신중론을 제기하는 것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할 뿐 속내는 문화재단 출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안의 본질은 도지사 측근을 둘러싼 일부 인사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것이다. 전북도나 도의회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문화재단 출범에 미온적인데다 일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문화재단 문제가 논란만 거듭한다는 것이다. 문화재단이 출범할 경우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전북도의 입김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굳이 문화재단을 만드는 데 어느 누구도 앞장서지 않는 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지역 문화계 일각에서는 "문화재단이 출범하면 결국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이 통합될 수 밖에 없는데 이의 수탁을 맡은 예원예술대 차종선 이사장과 김완주 지사의 특별한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지사 선거 때 선거대책본부 고문과 본부장을 지낸 차 이사장이 소리전당을 맡은 상황에서 도지사가 이를 당장 빼앗는 것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관측.
배승철 도의회 문건위 위원장의 애매한 처신도 입방아에 자주 오르고 있다. 배승철 위원장은 지난 2009년 문화재단 관련 조례가 제정될 때 입법 과정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임에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자신들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은 바 있다. 배승철 위원장과 차종선 이사장은 고교 선·후배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문화예술계 인사간 갈등 구조로 인해 재단 출범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인사 낙점설이 나돌면서 견제하는 쪽에서 '문화재단 불필요론'이 확산됐다는 것. 소위 새로운 문화권력 태동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데다,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문화재단 출범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지사 수장으로 인한 옥상옥 우려나 '공룡화' 문화재단 역시 설득력이 높지는 않다. 도는 문화재단 회의론을 펴면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포함한 3대 문화시설의 통합에 관한 입장 정리도 하지 않은 상태. 지역 문화계는 문화재단 출범을 지지부진하면서 가부간 결정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실익없는 논쟁 그만, 결단 내려야
"문화재단 출범을 여론 떠보기로 하려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전북도나 도의회가 명쾌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용역이나 토론회 혹은 신중론만을 되풀이하면서 혼란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도지사가 확고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며 "확신이 없이 여론추이에 따라 정책을 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도가 그림을 잘못 그려가는 것 같다"면서 "큰 축에서 얘기해야 하는데 이것 저것 건드렸다 반응이 안 좋으면 후퇴하는 식으로 일관하면서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있다"고도 했다.
다른 시·도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제기됐으나 치열한 논란 끝에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지은 지 오래다. 한 문화예술인은 "왜 전북에서만 옥상옥이나 공룡화 우려가 제기되느냐"며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쟁점을 또다시 거론해봐야 말장난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시·도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유독 전북도만 결론을 못내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만일 타당성이 없으면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면 될 문제를 질질 끄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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