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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가 말하는 '주부들 설 잘 쇠기'

1년에 2번 치르는 행사, 잔칫집 초대하는 마음 배려하고 헤아리면 '훈훈'

▲ 홍 대 금

(MBTI전문상담사)

명절 때 마다 고향과 가족을 찾아 민족 대이동을 한다.TV를 통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 귀향차량들을 볼 때마다 정 이란 게, 핏줄 이란 게 무엇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저렇게 움직이게 하는 걸까 괜스레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어려서 명절이면 벽장에 넣어둔 새 옷 새 신 꺼내보며 손꼽아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친지들 모여 북적대는 잔치 집 분위기에 학교도 안가니 마냥 들떠서 신났고, 온 동네 골목마다 기름 냄새 진동하면 비로소 명절모드에 설레던, 참 즐겁기만 한 설날이었다.

 

성장해서는 서울서 직장 다니다 붐비는 버스에 선물꾸러미와 두둑한 보너스 봉투, 부모 형제 만날 그리움에 부풀어 고향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고 휴가가 짧기만 해 헤어지기 못내 아쉬워 눈물로 매번 차창이 흐리던 명절이었다.

 

그러던 명절이 결혼해서 새로운 가족들과 시댁 풍습들과 더불어 폭이 넓어진 만큼 즐거움이 배가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녀독남인 남편이라 모든 준비와 음식을 혼자 도맡아 준비하고 친정에서 배우고 익힌 익숙한 방법이 아닌, 전혀 다른 요리법으로 이십 중반을 좀 넘긴 풋내기 며느리로서 양반집 차례 상을 차려내는 일은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온 남편은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어서야 들어오고 혼자서 하는 음식준비는 밤이 깊도록 해도 부족했다. 명절아침엔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 상을 준비하고 챙기고 치우고, 낮엔 인사하러 들르는 시댁 친척들 접대하고 또 치우고 하다보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지금이야 며느리 위상이 좀 달라졌지만, 7080 세대만해도 출가외인이라며 친정 챙기는 일이 눈치 보이는 일이어서 근처 친정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릴 동생들과 친정부모 생각에 애만 태우며 눈치만 보는 애꿎은 남편에게 눈만 흘기곤 했으니… 서로 살림살이 초보들이라 상대입장을 얼마나 배려할 줄 알았겠는가.

 

돌아오는 귀성길은 심신이 예민해져 여차하면 부딪힐 듯 냉랭한 평일만도 못한 명절 아닌 명절이 되고 있었다. 명절 후 만나는 대부분의 주부들, 거의 같은 하소연들 일색이었고 좋은 추억들보다는 불만 성토가 많아 여자로서의 한들이 쌓여만 가는 터널 같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점점 명절이 다가오면 미리부터 무거운 마음에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심란하기만 한 것이 집안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설 전날 밤 그날도 준비를 하다 지쳐 잠시 쉬면서 밤하늘의 달을 보고 있었다. 문득 내 평생 명절 준비를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1년에 두 번 명절들을 두고 평생을 고생이라 여기며 지낸다는 건 얼마나 부질없으며 훗날 삶을 돌이켜 볼 때 후회할지도 모를 일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은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면 아무도 몰라줘도 하늘에 복이 쌓인다 했고, 부처님은 한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아무 대가 없이 무주상보시를 행하면 무량한 공덕이 쌓인다 했거늘. 고생한들 얼마나 오래하며 힘이 들면 얼마나 들랴. 너나 나나 부족한 인생들에게 나의 수고를 더 알아 달라고 엄살이나 부리는 행색이 무척 초라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할 거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란 지라 가족들에게 하는 건데 나 하나 수고 하면 모두가 즐거울 것을, 마음 한번 돌리니 주객이 바뀌어 내가 벌리는 잔치에 모두를 초대하듯 무엇을 좀 더 해 즐겁게 할까 절로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살아서 윤회하듯 아이들과 같이 음식과 빔들을 사러 마트나 시장도 손잡고 다니며 나름대로 느낄 풍경들을 추억처럼 남겨주고 전 부치는 것도 거들게 하면서 내 어린시절의 남아있는 풍경들보다 더 많이 경험하게 해주며 보는 안목도 길러주고 가져야 할 마음가짐도 일러주었다. 얼굴 한번 못 본 시댁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는 것도 형식적이기 보다 새롭게 나의 솜씨를 선보이니 잘 드시라 기원하며 정성스럽게 올렸다.

 

이제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 학교 다니느라 서울서 지내다 명절이라고 내려온다. 집 떠나 있느라 변변치 못했을 좋아하는 먹거리 만들어 줄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으례 이맘때면 매스컴은 온통 명절 분위기를 고조 시키는 한편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다 뭐다 늘 같은 레퍼토리다. 마치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그러라고 부추기는 듯도 하다.

 

누군가는 긴 휴일을 이용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적은 식구들에 명절이 별 의미 없는 일상 같을 수도 있겠지만 명절은 명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지내는 맛이다.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가족을 가진 슬픈 명절인 가족도 있을 것이고 예기치 않은 병고로 준비 할 수 없는 갖가지 사연을 지닌 채 지내야 하는 상황에 비하면 한자리에 모여 같이 할 수 있는 명절! 다소의 심신의 피로쯤이야 행복한 고민 아닐까. 일이 힘들기보다 관계가 힘든 것이리라. 서로 배려하고 헤아려 주면 훈훈해질 텐데.

 

공연하고 돈을 주는 자와 받는 자 누가 즐긴 자 일까? 기다리지 말고 여유있게 먼저 마음을 내어보자.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같이 할 수 있음을 감사 한다면 지금 곁에 있는 존재들이 소중하리라.

 

부모가 갔던 길 내가 가고 있고 그 길을 따라 자녀들이 갈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남겨주고 싶은가. 좀 더 넓게 보고 깊이 있게 생각한다면 명절은 더 이상 고통의 경험 아닌 소통의 기회이고 숙제 아닌 축제가 될 것이다. 숙제 할 것인가,축제하듯 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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