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전북광역자활센터 센터장
돌이켜 보면 어느 한해 경기가 좋다고 기뻐하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매년 올해가 최악이고 제일 힘든때라고…. 생각해 보면 그런 얘기 속에 그냥 그렇게 흘러온 것 같다.
1997년 IMF구제금융 시절 한때 말고는 경기와 경제가 어렵다 하면서도 계절따라 관광지는 항상 만원이었고 고유가 걱정하면서도 주말 휴가때의 고속도로는 정체중 이었고 공항은 해외 여행객으로 붐비며 매년 출국자수를 갱신해댔다.
수출 1조달러를 이루었다는 정부의 고무적인 표정의 뉴스발표와 함께 언제나 경제성장 예측치는 긍정적이었다.
요즈음에는 고가의 해외 명품은 없어서 못팔고, 억대의 비용을 치러야하는 고급호텔 예식장은 예약이 항상 밀려있다.
그럼에도 대학졸업생의 청년 취업률은 매년 낮아지고 중년의 실직자 수는 늘어만 간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를 가진 자는 호황이지만 서민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걱정이다. 이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뭔가가 절실한 때이다.
근대 역사를 살펴보면, 심한 빈부의 격차는 생계와 삶이 불안정한 서민들에게 막강한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고 그들을 보호해주고 스스로 방어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어떠한 경제 시스템을 찾아왔다. 이를 통해 시장경제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18세기 후반 유럽의 산업혁명에 의해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 경제로 이동하면서 대도시로 모여든 대량의 노동자 집단은 가족으로 구성된 농촌공동체가 주는 보호 시스템에서 벗어나 혹독한 환경의 불안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19세기 초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자구적 활동의 산물이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농업중심의 경제 형태가 공업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산업혁명시의 유럽처럼 대량생산에 의해 노동력이 필요했던 대도시의 생산 공장에서는 농촌의 노동력을 대량 흡수하기 시작하여 많은 수의 이농자를 양산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 노동 형태에서 자본가와의 계약에 의한 집단 노동형태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토지에 기반한 마을 단위의 가족노동 경제는 개개인을 보호해주는 안전망이었고 생산과 소득은 공업적 생산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친인척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존재해왔다.
공업중심의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노동자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질적인 집단과 자본들은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못했고 이에 대한 위기감은 자연스럽게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안전망을 형성하게끔 하였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들이 공제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생산자 협동조합인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와 정부의 계획경제의 대안 영역의 경제 시스템이다. 첫째, 이윤보다는 구성원이나 지역사회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 우선적 목표이고 둘째, 독립적 운영 셋째, 민주적 의사 결정과정 넷째, 자본 보다는 인간과 노동을 먼저 고려한 배분을 운영원칙으로 한다. 자발적 참여에 의해 만들어 지며 회비와 투자금을 기반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며 판매하는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성공하여 에너지 공급 불안이나 글로벌 기업의 경제 위기에서도 당당한 도시와 사회적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늦은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팽배해지고 있다.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작금의 환경이 19·20세기의 유럽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그들의 시행착오 등을 면밀히 연구 검토하여 우리 현실에 알맞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온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다양한 공동체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
※ 김 센터장은 전주효문여중교장, 김제지역자활센터장, (사)천년전주사랑모임 이사장, 전주세계소리축제 상임부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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