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김원용 문화부장 - 중견 작가 위한 배려도 지역 예술발전에 중요…예술단체, 정치판 닮은 줄세우기 바로잡아야
추성수기자 chss78@
10여년을 우산으로 먹고 산 그에게 우산을 접기가 쉽지 않았다. 김 학장은"새로운 작업으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산모가 출산의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2004년 '다시 찾은 우산전'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옛날의 우산만이 아닌, 자연과 우산을 매치시키는 것을 고민했다. 매화와 사과나무·소나무에 색채 우산을 걸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시작한 것이다.
인생을 단거리 선수가 아닌 마라토너로 생각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현재의 자산을 기본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성취감과 더 큰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박 학장은 작업으로 보여줬다.
-요즘 사과나무에 우산을 얹히는 작업을 많이 한다던 데요.
"사과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했어요.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와, 그리스 신화에서 힘의 상징으로 트로이전쟁의 불씨가 됐던 게'황금사과'이야기 아닙니까.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사과 떨어지는 것에서 찾았고, 사과로 세상을 놀래주겠다던 세잔느는 사과 정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오늘의 관점에서도 자연의 파괴 속에 슬픈 사과도 있고, 외모 지상주의에 섹시한 사과도 있습니다. 사과만으로 삶과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전북문화예술계를 사과로 비유한다면 어떤 사과일까요.
"미술 전공의 대학 교수로서 전북예술계 전반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말일 것입니다. 다만 수도권에 비해 문화시설과 프로그램 등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크게 미흡합니다. 또 인적자원도 한계가 있어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나무도 심고, 잘 성장할 수 있게 거름도 주어 알차고 건강한 결실을 맺게 잘 보살펴야지 않겠습니까."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에 인적 자원이 중요한 데, 근래 예술 관련 학과가 잇따라 폐지되면서 예술인 양성에 차질이 우려됩니다.
"예술학과의 목표는 취업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취업률을 잣대로 삼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성과를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예술학과에 칼을 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해 원광대까지 그렇게 해 전북으로서는 큰 손실입니다. 예술인 수가 줄어 전북 예술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예술활동을 위한 전북지역의 여건은 어떻다고 보는지.
"자본이 있는 곳에서 예술이 발전하는 상황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북에서 예술이 꽃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레지던시 심사평가에 관여하면서 전주 교동아트 레지던시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 데,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작가들까지 '꼭 고향 같다'며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전주의 이미지를 높일 뿐 아니라, 타지역 작가와 교류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도립미술관에서 창작스튜디오를 통해 이런 역할들을 해주면 좋을 것입니다."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위해 자치단체의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젊은 미술인들이 전시 한 번 하려면 몇 백 만원이 소요됩니다. 전업 작가들에게는 그 경비가 만만치 않아요. 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문예진흥기금이 젊은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는 데, 한 번 받으면 3년을 못 받습니다. 젊은 감각을 갖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계속 전진할 수 있게 발판을 줘야 합니다. 더불어 40~50대 낀 세대는 그런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갤러리도, 자치단체도 중견 전업 작가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북지역 예술적 풍토 중에서 개선돼야 할 점이라면.
"예술은 개인의 창작 활동이지만, 지역의 예술발전을 위해서는 예술단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술 관련 단체장 중에는 문화예술발전을 위해서 일하려는 것인지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인지 헷갈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술 단체장 선거만 보더라도 정치판에서의 줄세우기처럼 세몰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연·지연에 따라 몇 사람에 의해 지역 예술계가 좌우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지역 예술계를 그리 뽑힌 사람들이 진정 문화예술발전에 헌신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의식있고 양식있는 예술인들이 단체와 거리를 두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술발전에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단체장들에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젊은 예술인들에게 한 말씀.
"80년대 후반 고향으로 내려온 후 5년 정도 지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 인사동만 하더라도 수 백개의 갤러리가 매주 그림을 바꾸던 시절, 전주에는 갤러리가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전시 내용에서도 만족할 수 없었어요. 한마디로 긴장감이 떨어지고 나태해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루기는 어려워도 잊히기는 쉽다'는 생각에 서울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진취적이고 경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요. '내가 이 정도만 해도 되겠지'자족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쟁상대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안일한 생각으로 좋은 작가가 되기 어렵다. 길거리의 발걸음부터 다른 서울에 자주 올라가서 자극을 받아라'고 주문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인터넷 정보만 잘 클릭해도 예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역에 한계점이 있다고 여기지 말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질 때 '지역 작가'의 굴레를 떨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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