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21:17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교육 chevron_right 교육일반
일반기사

시장에서 상품화되는 대상과 도덕성

■ 제시문

 

〈자료1〉

 

(가) 매품팔이 이야기

 

곤장을 맞게 된 이가 돈을 걸고 대신 매 맞을 사람을 구할 때마다 나서서 매품을 팔아 살아가던 사내가 있었다. 이 사내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백 대 매품을 하루에 두 차례나 팔고 비틀비틀 자기 집을 찾아갔다. 그 아내가 또 백 대 매품 한 건을 선불로 받아놓고 사내를 보자 기쁘게 이 소식을 전했다. 사내는 상을 찌푸리고, "내가 오늘 죽을 똥을 쌌어. 세 번은 못 하겠네." 아내는 돈이 아까워서, "여보, 잠깐 고통을 참으면 여러 날 편히 배불릴 수 있잖수. 그럼 얼마나 좋우. 돈이 천행으로 굴러온 걸 당신은 왜 굳이 마다 허우" 하고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대접하는 것이었다. 사내는 취해서 자기 볼기를 쓰다듬으며 허허 웃고, "그럽시다."하고 나갔다. 가서 다시 곤장을 맞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하고 말았다. -조선후기 학자 성대중, 〈창성잡기〉

 

(나)결혼식 하객 대행 도우미

 

내게 '결혼식 하객 도우미' 아르바이트가 생겼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신랑 아버지의 친구다. 결혼식 장소는 ○○이고, 도우미들은 토요일 1시 반에 집합하기로 되어 있다. 회사 측에서는 친구도 몇 명 데리고 오면 더 좋다고 한다. 일당 1만 5천 원에 7만원짜리 점심도 대접한단다. 신랑 측은 도우미 회사에 내는 돈까지 해서 나 같은 짝퉁 하객 한 명당 돈 10만 원씩을 부담하는 셈이다. 토요일 약속시간에 지하철 ○○역에 도착하자 60살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양복을 빼입고 모여 있었다. 도우미 회사 직원은 인원 점검을 한 뒤 축의금으로 낼 돈 봉투를 나눠줬다. 그날 동원 인력은 총 백 명이라고 했다. 결혼식은 2시 반에 시작됐다. 신랑은 잘났고 신부는 고왔다. 신랑 아버지도 풍채 좋고 돈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도 신랑 측이 짝퉁 하객 백 명에 돈 천만 원을 쓰면서 신부 측에 과시할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기야 이렇게 부질없는 허세에 헛돈을 쓰더라도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모양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할까

 

-한국일보, 2009년 7월 4일자 독자투고 칼럼 발췌

 

〈자료2〉시장의 도덕적 한계

 

지금 우리는 거의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고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시장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관련해서는 공정성과 가치 훼손의 문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정성과 가치 훼손의 문제는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과 사고팔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할 때 중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공정성의 문제는 사람들이 불리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공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시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시장 교환이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시장 교환을 불공정하게 강요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치 훼손의 문제는 시장이 손상시키거나 변질시킬 수 있는 태도 및 규범에 관한 것이다. 어떤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사고파는 경우에 그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가치 훼손 문제는 공정한 거래 계약 조건이 성립됐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평등한 조건에서든 불평등한 조건에서든 모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을 파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자신의 신장을 팔겠다고 결정할 수 있지만, 이 결정이 정말 자발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신장 거래 시장은 인간을 여러 부속이 합쳐진 존재로 보는, 변질되고 객체화된 인간관이 만연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다. -마이클 샌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자료3〉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경계

 

사회와 독립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완전히 유토피아적이다. 현실의 시장은 상품을 매개로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과 맞물린다. 경험적으로 정의하면 상품은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물건이며,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실제 접촉이다.

 

노동, 토지, 화폐는 산업의 필수 요소이며, 시장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본래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상품화될 수 없다.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생산될 수 없다. 게다가 노동은 비축할 수도, 사람 자신과 분리하여 동원할 수도 없다. 토지란 자연의 일부여서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인데, 이는 은행업이나 국가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노동, 토지, 화폐가 거래되는 시장들이 바로 그러한 허구의 도움으로 조직된다. 이것들은 시장에서 실제로 판매되거나 구매되고 있으며, 수요량과 공급량도 현실에 존재한다. 자기조정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요소 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법령이나 정책은 시장 체제의 자기조정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환경의 운명이 시장 메커니즘에 좌우된다면 결국 사회는 황폐해질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문화 제도의 보호막이 모두 벗겨진 채 사회 문제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2)의 관점에서 (1)의 (가), (나)를 논평하고, (2)와 (3)의 차이에 주목하여 '상품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900자±50자)

 

*이번 제시문과 논제는 2013 고려대학교 인문계A 수시 기출문제입니다.

 

2. 면접 문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3가지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

 

(친구와 함께 묻고 답해보세요.)

 

■ 쟁점 확대하기

 

1.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되냐구!"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마음을 얻기 위해 원빈이 연기한 대사는 아직도 드라마 속 명장면으로 유명하다. 사랑과 우정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우리 사회 물질만능, 시장만능주의 풍토의 반영이다. 우리의 시장에는 혈액 판매, 생명 보험 등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상품화되어 나온다. 우리는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해 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너는 하루공부의 가격이 얼마라고 생각하니?〉라는 도서명처럼 학생들은 자신의 하루 공부의 가치도 나중에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매품팔이에서 지금의 결혼식 하객 대행 도우미까지 상품화의 대상은 생산된 물건의 범위를 넘었다. 여기서 인간의 생명과 친구과계의 우정과 같은 정신적인 가치가 시장에 의해 훼손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 논제의 첫 번째 조건은 현대사회 시장에서 상품화 되는 대상과 거래 과정을 도덕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공정성과 가치 훼손 두 가지이며 각 기준의 초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제 시장 상품화의 사례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논제에서 '(2)의 관점에서 (1)의 (가)와 (나)를 논평'하라고 했는데, '논평'이란 어떤 글이나 말 또는 사건 따위의 내용에 대하여 비평하는 것을 뜻하며, '비평'이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성과 가치훼손의 문제를 기준으로 매품팔이와 친구 대행에 대해 옳고 그름을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면 된다. '공정성'이란 자발성을 기준으로 거래의 불평등함을 분석하는 것이고, '가치훼손'이란 거래 행위로 인해 대상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매품팔이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공정성 측면에서 분석하고, 하객 도우미 아르바이트로 인해 친구, 우정, 결혼 문화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지 논평하도록 한다.

 

3. 현대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능력은 신뢰할 만한 것이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에 칼 폴라니는 자기 조정 시장은 비현실적인 이상이라 비판한다. 제시문에서 자료2와 자료3의 차이를 명확하게 비교하고 서술하는 것이 두 번째 논제의 요구사항이었다. 차이를 파악하기 위한 전제는 역설적이게도 공통적 요인을 찾는 데서 출발하게 된다. 제시문에서 주제의 핵심을 적절히 추론한 후에 두 제시문 간의 공통 분모를 찾으면 그 비교 대상이 되는 차이도 순차적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2와 3은 모두 상품화의 대상과 정당성에 대해 비판적 견해로 접근하고 있는데, 노동, 토지, 화폐 등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자료2에서는 노동, 토지, 화폐 등을 사고 팔 수 있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 시장에서 공정성과 가치훼손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지 점검하며 상품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료3은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물건이 아닌 것에는 결코 상품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화하는 것은 허구이며, 이런 상품 허구는 심각한 인간 사회와 자연 환경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 쟁점 관련 도서

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들)

2.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칼 폴라니)

 

■ 쟁점 관련 영화

 

1. 제리 맥과이어(1996, 카메론 크로우)

2. 부당거래(2010, 류승완)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1. 학생 논술문

 

〈자료2〉는 현대의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를 지적하며 재화의 거래에 있어서 자발성의 유무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겨날 수 있는 공정성의 문제와 공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재화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가치 훼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위 제시문의 관점에서 볼 때 〈자료1〉의 (가)에서는 매품팔이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여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는 공정성의 문제와 가치 훼손의 문제를 볼 수 있고, (나)에서는 소중한 정신적 가치인 '친구 관계'가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되어 발생하는 가치 훼손의 문제를 볼 수 있다.

 

자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거래'라는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일명 돈으로 살 수 없는 범위까지 확대되면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였고 이에 따라 사고판다는 논리가 현대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덕적 가치들이 상품으로 변질되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삶'을 살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대 시장에서 발생하는 비도덕적 상품화를 비판적으로 제시한 〈자료2〉와 산업의 필수 요소인 노동, 토지, 화폐가 생산된 목적이 판매를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화가 될 수 없다고 제시한 〈자료3〉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상품화'란 일정한 기준에 의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생산된 것만이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상품화를 진행한다면 결국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한낱 상품으로 전략하여 본질적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주해성고 3학년 이건용

 

2. 교사 총평

 

2013부터 논술의 체감 난이도는 쉬워졌지만, 제한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에 영민하게 논제의 조건을 파악하고 그 논제의 기준에 따라 제시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논술하는 것이 중요해요. 평가의 한 방법으로 시행되는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제가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게 쓰는 것입니다.

 

△독해력

 

〈자료2〉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관점에 따라 〈자료1〉의 (가)와 (나)의 사례에 적절하게 논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조건이었던 〈자료2〉와 〈자료 3〉의 차이에 주목하는 부분에서 미약함이 보입니다.

 

△논리력

 

전반적으로 논리를 무리없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서 '상품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할 때 모호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건용 학생은 일정한 기준에 맞는 범위 안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고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표현력

 

여러 내용을 접속조사 '와'로 연결하여 말하려고 하는 바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문장이 보여요. 문장을 길게 쓰기 보다는 간결하게 쓰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