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토익점수·학점 등 요구 / 지역·학력 차별 취업문 바늘구멍 / 지방대생 채용할당제 필요
대학생활 4년 하고도 6개월. 나모씨(가명)의 동기들은 이미 직장에서 자리를 잡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은 취업을 위한 인턴경력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나씨는 지난해 졸업예정이었지만 한 학기 졸업유예 신청을 한 상태다. 이번 상반기 공채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면 '대학교 5학년생'이 된다. 흔히 취업준비생이라고 불리는 나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다. 아침 7시 30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해 한국사 공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무원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다. 적어도 3학점을 신청해야 하는 졸업유예 조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공과목 하나를 신청해 듣는다. 그럼에도 나씨가 졸업이 아닌 졸업유예로 남는 이유는 학생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기업에서 졸업하기 전 학생을 좀 더 선호 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오후 2시에는 상반기 채용 기업 특강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려고 보면 자신이 없다. 스펙(학력·학점·토익점수 등을 합한 것)이 아닌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데 스펙이 없으니 스토리가 되질 않는다.
△대학교는 지금 취업학개론
팟캐스트 방송 '취업학개론'이 장안의 화제다. '취준생의, 취준생에 의한, 취준생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이 프로그램은 기획자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두 명의 진행자들이 채용과정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취업과 동시에 방송을 끝낸다'는 시한부방송으로, 취업준비생이라면 공감할 고민의 공유를 통해 그 시작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이력 역시 눈길을 끈다. 한 명은 유명 대기업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신의 회사'를 퇴사했고, 다른 한 명은 국내 최대 금융그룹 중 한 곳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게 된 이른바 엘리트 '돌아온 취업준비생'이다. '취업학개론'이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 가운데 유난히 빛나는 이유는 그만큼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이 전무하다는 반증이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왔습니다. 취업도 못한 상황에 주말이라고 집에서 편히 쉬기가 불편해서요. 5월에 있을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입니다"
따뜻한 봄날씨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전북대 학습도서관(이하 학도)으로 출근한 한 학생이 말끝을 흐린다.
지난 24일 학도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많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1층에서는 스터디를 하는 학생들로 스터디룸이 모두 차있다. 전북대 법학과 4학년 맹모씨는 "토익 없이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토익은 기본"이라며 "토익학원을 다니면서 아침 토익스터디를 신청했다"라고 말한다. 나른한 오후에도 학습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학생들이 이어진다. 오후 6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다시 두꺼운 책을 펼친다. 학도 안의 탁한 공기만큼이나 취업준비생의 하루도 고단해 보인다. 학도 밖 학생 몇은 커피를 마시고 몇은 말없이 담배만 피운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도 24시간 운영되는 학습도서관 열람실 불은 꺼질 줄을 모른다.
△평균스펙은 높아지는데…
4년제 대학 졸업에 높은 학점은 기본이고 어학능력, 공모전, 대기업 인턴까지 화려한 스펙에도 청년들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전북대 취업지원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률은 55.0%로, 2011년 62.7%보다 소폭 떨어졌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2013년 2월 고용동향'에서도 2월 고용률은 전년 동월 대비 0.3%p 하락한 57.2%였고, 15∼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전월에 비해 1.6%p 급상승한 9.1%로 지난해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대 청년층의 취업자 수는 전월 대비 15만9000명 감소하면서 청년층의 고용사정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사학과 3학년 정명기씨는 "기업에서 원하는 토익점수를 받으려고 학원을 다녀도 학원비가 만만치 않다"며 스펙 쌓기에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이나 학력 등 차별적인 요소가 배제된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심리학과 4학년 고동우씨는 "별다른 스펙도 없고 뛰어난 학점도 아니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공무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저학년 때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두하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도연씨(전북대 도시공학과 2)는 "워낙 취업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일찍 공무원이나 그냥 취업을 목표로 가능성을 열어 둔 채 고려중이다"고 전했다.
△중소기업 활력 찾아야
취업난 해결을 위해서는 지방대생 채용할당제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더불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적 지원을 충분히 해 대기업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 더욱이 청년일자리 보장을 위한 대안이 부족한 현 시점에서 실질적인 대안모색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고용률 증대는 곧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달렸다. 새 정부가 들고 나온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로드맵은 '창조경제론'이다. 창조경제의 핵심 실무부서로 현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새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미래 일자리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그 단어만큼이나 매우 추상적이다. 제목만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방안과 계획,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만든다. 이는 대기업보다 많은 수의 중소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핵심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활력을 찾으면 일자리가 늘고 고용률도 높아질 것이다. 고용률 증대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상생이 필수적이다.
이 민 주
(전북대 신방과 4년)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