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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심 털어내고 부활합시다

서석구 원로 사제 (前 전주 금암성당 주임 신부)

나는 몇 년 전 수술 휴우증으로 다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휴우증이 10년 간 계속 돼 불면증과 우울증이 심해져 온종일 분심으로 지낸 날들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전주 금암성당에서 물러나면서 39년 갈팡질팡했던 사목생활을 마무리하자 처음엔 홀가분했습니다. 하지만 몸에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는 분심 때문에 잘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한때 나를 힘들게했던 우울증을 잊어 보려 했던 무리한 산행이나 책을 붙들고 밤을 새던 일을 다시 해보게 됐습니다. 약물로 도움을 청했고, 술로도 밤을 달래보고, 텃밭에서 잡초도 뽑아보고 낚시터에 가서 낚싯대만 담가놓고 낚아보기도 했었습니다. 친구 따라 골프장에도 갔으나 잠깐 흥미가 생겼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해찰을 했습니다. 운전을 배웠고 시장을 어슬렁거렸으며 수영장에 가서 개헤엄을 쳤고 백화점에서 아이쇼핑만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취미 없는 극장에도 가서 졸다가 나온 경우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어느 순간 두려움으로 엄습했던 불면의 밤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사제로서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삶이 고해라는 말을 느낀 순간들이었지요. 부처의 고행을 묵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환자복을 입고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남의 병실도 기웃거려보고 한밤중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간 순간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죄 없는 혈관에 주사로 찔러대고 부모님이 주신 귀한 몸에 칼질도 여러 번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작고한 박완서의 '호미' 중에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젊었을 적에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에는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진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내가 지금 딱 그 꼴입니다. 영혼과 육신의 상전의 자리가 바뀌어 갑니다. 저는 고난 앞에 약점이 많은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사람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지요. 누가 지금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도와주고 싶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요. 부활을 맞아 기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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