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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독립운동' 95주년 추모비 제막

고창 새마을공원서 29일 개최 / 137명 중 도내 유림 4명 기려

▲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1919년 3·1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뒤를 이어 1919년 3월 말 한국 유림 대표 137인이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국제적으로 한국 독립의 여론을 환기시키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소위 ‘파리장서 독립운동’이 95주년을 맞아 뒤늦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창군과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추진위원회(위원장 송영래)는 95주년에 맞춰 오는 29일 고창 새마을공원에서 파리장서비와 함께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하신 고창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지사(志士)의 추모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갖는다.

 

파리장서비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유림들이 1919년 1월부터 프랑스 파리 베르사이유궁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결산하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독립의 대의와 정당성을 설파한 독립청원서를 만들어 파리평화회의 대표단과 중국에 나와 있던 각국 외교사절, 국내 향교 등 각 기관에 대거 배포한 사건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곽종석, 김복한 등 전국 유림 대표 137인이 서명했다.

 

137명의 서명인 중 호남 출신으로는 10명의 선비들이 참여하였는데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선생 등 네 분이 고창 출신이다. 네 분은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앞서 1905년 말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돼 사실상 민족 주권을 강탈당했을 때 목숨을 걸고 스승인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시고 의병투쟁을 주도하시다가 옥고를 치르셨다.

 

네 분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에는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유림의 전국 비밀결사조직인 독립의군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가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이 중 고예진 선생님 등 유림은 기독교 목사님들과 함께 12인이 1919년 3월 5일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장서’를 작성해 종로4거리에서 크게 낭독하고 총독에게 전달했다가 역시 옥고를 치렀다.

 

선언장서는 제2의 독립선언서로 평가되며 당시 3.1운동의 불씨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선언장서 투쟁은 동아일보 1950년 3월1일자에 크게 ‘33인 뒤이은 12지사 비화’라는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유족대표인 고석상 전 성균관 부관장은 “독립지사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독립된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분들이 반쪽 나라를 원하신 것이 결코 아닌 만큼 통일조국이라는 완벽한 독립국가를 이루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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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skk407@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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