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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책 읽기] 책과 노는 사람들 - (하) 지역 강소서점

● 군산 한길문고 - 차 마시며 책 읽는 공간, 세미나·영화감상까지 
● 김제 삼화서점 - 채만식 문학기행 인기, 시인 초청 강연도 눈길

한국의 서점은 2000년 초에 비해 2/3 이상이 사라졌다. 이같은 쇠락을 심상찮은 징후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 출판 저널리스트 이시바시 다케후미처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서점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부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서점가의 미래는 어둡다.

 

지역 서점시장은 빈사 상태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1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북의 서점수는 132곳으로, 전국의 5.6%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전주지역에만 50%가 넘는 67곳이 있고, 군산은 18곳, 익산은 17곳으로 조사됐다. 무주·순창·임실·진안은 1개 서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서점의 멸종이 임박했다’는 비관론에 맞서 ‘단골 손님을 모으는 문화사랑방으로 거듭나겠다’는 낙관론에 군불을 때는 지역 서점들을 두 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주인 추천 베스트셀러 눈길

   
▲ 군산 한길문고 중앙매대에는 ‘한길문고 베스트셀러’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을 중심으로 한길문고 대표의 취향이 반영된 책들이 진열돼 있다.

지난 11일 군산 한길문고는 한산했다. 작고한 한길문고 이민우 대표의 아내 문지영씨(46)는 “남편이 떠난 지 1년도 안 됐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던 이민우 대표의 형인 이선우 이사(57)가 한길문고 역사를 대신해 읊조렸다. 이 이사는 지난 2012년 8월 군산에 내린 폭우로 책 10만권이 물휴지가 됐다가 25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2층에 재개관하면서 오히려 매출이 소폭 늘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심으로 이 모든 것이 군산 시민들의 애정과 관심 덕분”이라는 감사 인사도 뒤따랐다.

 

이 서점 중앙매대‘한길문고 베스트셀러’에는 조정래의 ‘정글만리’와 함께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편혜영의 ‘몬순’이 놓여 있었다. 소설가 신경숙·윤대녕 등이 잇따라 호평한 ‘몬순’은 유명 서점을 장악한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한길문고가 추천하는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옆 매대에 있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철학자 강신주의 ‘감정수업’과 사회적 약자에 시선을 돌린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갑과 을의 나라’, 이병훈 등이 쓴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가 나란히 있었다. 이선우 이사는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상관이 없는 대표의 책 취향이 반영된 곳”이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없는 책의 후원자는 매력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대형 서점의 축소판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이 이사의 생각이었다. 그는 서점의 한 켠을 세미나와 영화감상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서점 곳곳엔 책상과 의자를 놓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차 마시며 책 읽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꾸려 군산 출생인 고은 시인의 친필 사인과 함께 전시된 절판된 그의 시집을 비롯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책 1000권으로 만든 트리는 온라인 상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한길문고의 평일 방문객은 300~400여 명, 주말엔 500~600여 명이다. 영화‘겨울왕국’의 인기로 관련 서적이 잘 팔리고 문구류 등이 수익에 보탬이 되는 게 아쉽지만, 책을 보고 싶어서 오는 단골 고객들이 여전히 많다. 이 이사는 “동생(이민우 대표)의 추천으로 일본어를 익힌 뒤 일본으로 교환학생 가게 됐다고 인사오는 대학생 등을 만나는 게 한길문고의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사랑방 고심 중

   
▲ 김제 삼화서점에서 고객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삼화서점은 김제시 요촌동 후미진 곳에 있다. 1975년 문을 처음 연 이 곳은 40년 가깝게 명맥을 잇고 있다. 한때 10여 곳에 달했던 김제지역 서점은 최근 몇 년 사이 딱 2곳만 남았다. 삼화서점이 이런 위기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봉남 대표(67)의 집념 때문이다. 최근엔 사위가 삼화서점을 넘겨 받았지만, 정 대표의 인생 8할은 삼화서점과 겹쳐져 있다.

 

지난 11일 서점에 들어서니 중년부부가 매대를 서성이고 있었다. 서점의 중심엔 초·중·고교 참고서 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양쪽 매대엔 어디선가 한 번 봤음직한 베스트셀러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대 뒤쪽으로는 독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잡고 있다.

 

정 대표는 김제의 자생 봉사단체인 청진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김제 출신 벽천 나상목 선생(1924~1999)과 강암 송성용 선생(1913~1999)의 작품을 기증받아 전시회를 열고, 그 기금으로 무료 독서실을 운영했다. 정 대표는 “그 당시만 해도 환경이 열악해 집에서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참고서 한 권도 사보기 어려울 때 책을 구비해놓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떠올렸다. 정 대표는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새마을문고 김제지부장을 맡으면서 경찰서 유치장 내 교화문고를 설치하는 일을 주도했을 만큼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매진해왔다.

 

이같은 활동 덕분에 삼화서점은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역서점 문화활동 운영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동네서점 진흥을 위해 시작한 이 사업을 등에 업고 정 대표는 김제시립도서관과 함께 ‘탁류’와 함께하는 채만식 문학기행, 김용택 시인을 초청한 강연 등을 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 대표는 “문학기행을 떠났을 때는 참석자들이 시골 서점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감격스러워했다”면서 “특히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구연동화 프로그램 등은 미래의 젊은 독자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뜻 깊었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의 고민은 그러나 현재 진행형이다. 지역서점 문화활동 운영 지원 사업이 올해 중단됐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정부가 전시성 사업으로 이벤트 효과만 얻으려는 것 같다”면서 “일회성 지원으로는 동네서점이 살아날 수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 이웃들이 있는 한 서점은 꿋꿋이 버텨나갈 수 있다는 것을 삼화서점이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정 대표는 덧붙였다.

 

● "군산 6월 항쟁 주도, 참 따뜻했던 사람"

 

- 6월 14일 1주기 추모제 앞둔 군산 한길문고 故 이민우 대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박창신 신부는 “6월만 되면 따뜻한 사람 고(故) 이민우 선생이 기억난다”고 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고 이민우 대표(1961~2013)는 1984년 군산 오룡동 성당에서 노동사목을 맡으며 박창신 신부를 처음 만났다. 오룡동 성당 구석방에서, 사진 암실에서, 녹두서점(한길문고의 전신)에서 군산을 생각하며 1980년대를 뜨겁게 보낸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군산에서 시민운동을 했던 그 누구에게나 서툰 작별이었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년. 세상이 다시 이민우 대표를 찾고 있다.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를 주축으로 한 이민우 선생 전북민주사회장 장례위가 1주기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를 창립시킨 고인은 지난 16년 간 상임·공동대표, 운영위원을 맡으며 투쟁의 기획자로 시대와 호흡했다.

 

유재임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그는 군산의 6월 항쟁을 주도했던 분”이라면서 “크든 작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이민우 선생의 추모제는 그가 기일인 6월 14일에 맞춰 열릴 예정이다. 이선재 전 한겨레신문사 군산문화센터팀장은 “민우가 떠나기 전 한 달에 한 번씩 작가를 초청해 소통하는 일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했다. 먼 길 가는 순간에도 서점인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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