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별명 수줍음 많은 소년, 28세부터 교수로 / 갈등 너머 화합 리더십…전북시민참여포럼 창립 / "학부모·교사·지역사회 함께하는 교육공동체를"
지난 23일 전주시 팔달로 신환철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들어서니 화이트보드에 쓰인 글씨가 눈에 띄었다. ‘갈등 너머 화합’, ‘불통 너머 소통’,‘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결의에 찬 문구였다. 26℃를 웃도는 후텁지근한 사무실은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캠프 관계자들은 이마저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 보였다.
지난 22일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오전 7시부터 오후 11~12시까지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에 신환철 후보(62)는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신 후보는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며 허리가 넉넉해진 바지를 가리켰다. 1년 전부터 ‘명당’으로 입소문난 이 선거사무실을 계약한 그지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결과 공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단일 후보 불복 논란, 현 교육감의 지지율 독주 등 걸림돌은 많았다. 후보 등록은 오랜 고심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학창 시절
신환철 후보에게 어머니는 애달픈 존재다. 자식을 향한 가여운 모정 덕분에 그는 삐뚤지 않고 올곧게 성장했다. 정읍에서 먹고 살 걱정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버지는 가세가 기울자 술로 세월을 보냈다. 집안은 어머니가 떠안게 됐다.
초등학교 입학은 1년 앞섰다. 그는 “하지만 7살에 학교에 들어간 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어린 나이에 걸려 친구들을 주도하는 리더십·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기골이 큰 어머니를 쏙 빼닮은 신 후보는 키는 컸지만 약골인 탓에 ‘키다리’,‘갈비씨’로 불리기도 했다. 신 후보의 키는 178㎝. 학창시절 키가 현재의 키라고 했다. 이처럼 큰 키 덕분에 동창들은 “‘껀정한’ 신환철을 모르는 얘들은 없었다”면서 “수줍음은 있었으나 친구들을 잘 배려했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전주지검 부장검사였던 숙부는 신 후보를 아들처럼 여기며 장조카의 전주고 진학을 도왔다. 엄격하신 숙부 덕분에 그는 학업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재수 끝에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입학한 그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청소년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가정 생활
대학생활도 시련의 연속이긴 마찬가지였다. 서울로 대학 진학 좌절에 대한 자괴감, 군 입대 등 진로 고민이 많아져 방황했다.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게 고교 교사출신의 아내 이정숙씨였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이씨와 8년의 로맨스 끝에 1978년 결혼했다.
후보 단일화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아내는 그에게 굳건한 지지자였다. 아내는 “신환철 후보가 교육감으로서 모자람이 없다”고 출마를 독려했고, 중도 포기를 고민할 때마다 완주를 격려했으며, 전방위 선거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신 후보는 “지난 2월 정년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아내는 승진·이해관계 등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전념해왔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고 했다. “교육감 선거에서 속 시끄러운 일도 많았지만, 아내와 두 딸, 아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지가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신 후보의 산(山)사랑은 가족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산악회‘전사랑산사모’를 결성, 틈만 나면 방장산·연석산·적상산 등 전북의 크고 산을 누볐다. 더불어 산악인들의 대소사를 세심히 챙기는 의리의 산사나이로도 유명하다.
속정 깊은 따뜻한 이 산사나이는 “오르자 술! 마시자 산!”으로 외칠 만큼 애주가이기도 하다. 술자리가 거듭될수록 그는 “전주 주(酒)식업계의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고 지인들은 귀띔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취중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깍듯한 그의 성품 때문에 가족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교수 임용
신 후보의 28세 때 박사학위 없이 교수로 임용됐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신 후보는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스펙을 가지고 지방행정을 가르치는 국립대 교수가 되는 영광을 안은 것은 커다란 은혜”라고 했다. 전북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를 받고, 행정학과 석사를 밟으면서 국비 조교 시험·교수 충원 시험에 연달아 합격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은 컸다. 교수 임용 뒤 “배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미국 위스콘신대 석사를 따러 유학 길에 올랐다. 전북대 사회과학대 학생과장·행정대학원 교학과장·지방자치연구소장·사회과학연구소장 등 학교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도 박사학위를 밟았다.
영원한 스승이자 멘토인 조영빈 전(前) 전북대 총장은 당시 그에게 김종술 전남대 교수를 추천하며 박사과정을 권유했다. 비판적 행정이론의 관점에서 쓴 박사논문‘인간성 회복을 위한 조직 구상’은 그래서 나왔다.
신 후보는 교수 재직 당시 봉사·재능 기부·의식 교육 등도 꾸준히 실천했다. 2003년 전북시민참여포럼을 창립해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시민교육을 줄기차게 진행했다. 무려 1200여 명의 학생들이 배출됐다. 그는 “독·야학을 하던 학생들이 성공해 사회에 다시 재능기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또한 2005년 전북대 평생교육원장을 맡으면서 전국 최대 규모의 기관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의 열정으로 평생학습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운영됐다. 신 교수는 ‘2013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의 교육공로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교육철학
한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학교는 ○이다.” 상당수 학생들은 “감옥”이라고 답했다. 신 후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본원인은 오로지 성적으로만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신 후보는 “여러 줄 세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로직업교육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신 후보는 ‘3세대 교육감에 의한 3세대 교육론’을 꺼내들었다. 1세대 교육감은 교육 관료로 낡은 관행에 의지했던 교육감이었으며, 2세대 교육감은 이념 중심의 교육철학으로 인해 갈등만 야기한 교육감이었다는 진단이다. 그는 “3세대 교육감은 융합과 개방을 통해 학생·학부모의 관점에서 창조적인 대안을 실천하는 교육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3세대는 편 가르지 않는 교육, 융합과 개방 교육, 오로지 학생들만 바라보는 사람 중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후보는 “뜬구름 잡는 진보와 보수 논쟁은 더 이상 미래의 대안이 아니다”면서 “학교를 개방해 학부모, 교사,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했다.
● 신환철 후보의 약속
- 학력신장·인성교육 참된 청렴문화 구현
신환철 후보의 슬로건은 자신의 이름을 딴 ‘학생은 신나게! 선생님은 환하게! 전북교육은 철저하게!’다. 전북교육을 책임지는 소통교육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소통의 단초는 ‘너머 교육론’에 있다. 신 후보는 ‘갈등 너머 화합, 관습 너머 혁신, 타성 너머 열정’으로 신나는 교육 프로젝트를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신 후보의 5대 공약은 학력 신장, 인성교육, 청렴문화 구현, 행복한 전북교육, 예산 확보로 간추려진다. 특히 학력 신장 공약에서 학교·학생의 자율권을 적극 허용하는 방향의 고교 입장 표명제 실시와 고교 우수학생 5% 우선 선발권 부여가 눈길을 끈다. 지역에 상관없이 희망하는 고교를 지원할 수 있는 고교 입장 표명제는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로 서울시교육청이 시도한 바 있다.
청렴문화 안착을 위해 제시된 ‘투 트랙 감사제’ 역시 감사담당관은 폐지하되 내부 감사와 외부 감사를 함께 추진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또 김승환 후보의 대표적인 성과이기도 한 혁신학교에 투입되는 예산을 재분배하겠다는 복안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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