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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 출몰에 마을 지키던 친구 불망비라도…"

남원 박환기씨 6·25때 야경조 활동중 순국 / 숭고한 희생정신 잊혀져 추모 사업 아쉬움 / 친구 박의식씨 내용 알려와

▲ 박의식씨가 마을을 지키다가 순국한 친구 고 박환기씨의 묘비를 살피고 있다.

“친구의 의로운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불망비(不忘碑)라도 세울 수 있다면….”

 

지리산 전투경찰과 행정공무원 등 32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거친 박의식(82·남원시 수지면) 씨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전해왔다. 6월이면 더욱 생각나는 어릴 적 친구에 대한 얘기다. 친구 이름은 고 박환기(朴煥岐) 씨.

 

1950년 12월5일 밤 공비출몰 때 마을 사람들을 피신토록 조치하고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고인의 활동상과 현재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이 점차 없어져 아쉽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박 씨는 “수지면 고평리 양촌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던 박환기는 건강이 쇠약했으나 무척 영특했다. 나이 겨우 19세로 지리산전투 때 야경조의 일원으로 마을을 지키다가 공비에 납치돼 깊은 골짜기에서 이름도 없이 홀로 얼어 죽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박 씨는 이어 “친구 박환기는 공비출몰 정보를 입수하고 즉시 마을 사람들을 토굴과 피신처로 피신하도록 조치하고, 이웃마을인 고정마을에 설치된 의용경찰 파견소에 연락하기 위해 2㎞를 뛰어갔다. 하지만 공비는 마을을 점령한 상태였다”면서 “그들의 포위망에 들어 체포된 채, 산으로 갔다가 몸이 쇠약했던 탓에 살아오지 못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박 씨는 친구를 포함해 4명이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추위 및 공비출몰이 무서워 사람들이 찾으러 가지 못했고, 연약한 환기의 어머니가 자식을 찾아 돌아왔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마을 주민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고정마을 의용경찰 파견소로 한걸음에 달려간 그의 의로운 행동이 아니었으면, 그 때 양촌마을 주민 다수가 납치돼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강조한 박 씨는 고인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그의 무덤 앞에 표석을 세워놓고 지난 63년 동안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19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 탓에 후계가 없고 돌보는 이도 없는 상황에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없어져 숭고한 희생정신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 씨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이 내용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친구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해 숭고한 희생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고 싶고, 절차상 그 것이 여의치 않다면 그의 초라한 묘역 앞에 불망비(不忘碑)라도 세워주고 싶은 친구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라고.

홍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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