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반발 속 공사 재개…"밀양 악몽 재현 우려"
농번기 일주일 동안의 휴전. 송전탑 공사장 대치 35일, 시청 앞 노숙 9일 만에 얻어낸 평화는 짧았다.
지난 5월 12일 새벽, 한전은 군산시 산북동을 비롯한 옥구읍 일대 5개 현장에서 3년간 중단됐던 새만금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새만금송전철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공사를 시작하면 통보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농번기, 그것도 주민들의 눈을 피해 새벽 2~3시부터 공사를 강행한 한전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수확을 앞둔 보리밭이 망가지는 모습에 항의하던 농민의 트랙터가 뒤집히는 사고가 났다. 5명의 할머니들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를 지켜본 지역 목회자들은 항의 릴레이 단식을 시작했고 79차 송전탑 반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소를 당한 것은 주민이었다. 한전은 주민 25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한전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안노선은 불가능이라는 국민권익위의 결정이 있고 난 후에도, 김관영 국회의원의 중재에 따라 전문가협의체 구성을 논의 중이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공사를 재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공동대책위가 왜곡된 정보로 지역사회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면서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옥구 들녘에서 밀양 송전탑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만금 송전선로는 군산과 새만금 산업단지의 전력공급을 위해 군산변전소∼새만금변전소 구간(30.6㎞)에 송전탑 88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008년 12월 군산시와 한전이 전력공급 MOU를 체결하고, 2011년 2월 군산시가 도시계획시설사업 인가를 받아 공사를 착공했다. 2012년 6월까지 철탑 42기 시공을 마쳤다.
△ 산업단지 전력 추가공급 시급한가
전력수요 논란은 군산 송전탑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군산지역은 154KV 송전선로 2개 루트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최대 공급용량은 1398MW인데 산단 내 고객 계약전력은 1472MW이다. 한전은 산단 전력공급이 부족한 상태이고 송전 계통이 취약해 선로 관리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평소 송전선로 이용률이 81.6%입니다. 154KV 한 회선이 고장나면 과부하로 전력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유선로가 없으니 선로정비도 쉽지 않고요. 단전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얘깁니다.” 한전 전북건설지사 김태용 차장은 전기 용광로를 쓰는 OCI와 세아베스틸 등 두 회사에 전력공급을 일부 제한하고 있어 송전선로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민대책위는 새만금 산단 OCI공장 증설이 수년째 연기되고 있어 송전탑 건설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OCI 4,5 공장 증설이 4년째 연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사업 포기 아닌가요? 송전탑 건설은 OCI가 새만금 산단에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말만 믿고, 군산시가 전원(電源)개발특별법이 아닌 도시계획시설결정으로 밀어붙인 거잖아요.” 주민 대책위 강경식 법무간사는 공장은 오간데 없는데 송전탑만 남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향후 전력수요 전망에 OCI 4,5 공장 증설분은 반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새만금송전탑 환경영향평가서상에 동양제철화학(OCI의 옛이름) 증설에 따른 전력수요가 언급되어 있다. 출처는 한전 자료다.
한전은 군산산단의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주민대책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전기수요가 166MW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대책위는 계약 전력은 기업의 여유 전력 확보용이기 때문에 수요관리 차원에서 일부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급제한이나 거절한 전력을 수요 증가량에 포함시키는 것은 부풀리기 셈법이라고 꼬집었다.
“주민들이 송전선로 증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가 주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전력 수요 예측이 맞는지, 대안노선과 지가 하락 등을 검증하고 추진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79차 새만금철탑반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는 이태영 목사는 밀양과 달리 군산은 합리적인 대안이 있고, 도시계획시설로 건설되는 사업이니만큼 시가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전 김 차장은 “기존 노선 철탑을 일단 건설해 놓고 대안노선이 합당하다면 다시 뽑아내 그쪽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지가 하락, 1조5000억 피해 공방
주민대책위는 자체 기금으로 (사)한국지역개발학회에 맡긴 용역 결과를 근거로 지가 하락 피해액이 1조5000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셈법은 간단하다. 송전탑 계획 발표 전후 송전선로가 지나는 주변 땅값의 실제 매매 가격의 차이를 계산해 대입한 것이다.
“실제 거래가격이 뚝 떨어졌어요. 사려는 사람도 없고요.” 대책위는 군산시가 송전탑 주변 매매 자료를 검토해서 주민들이 제시한 기준액이 타당한지 판단해 달라며 집단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토지는 주변 개발이나 규제 요인에 따라 가격 형성폭이 크기 때문에 송전탑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은 주민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법적 근거도 없고 신뢰성도 의문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공법학회가 산정한 송전선로 주변토지 감가율을 적용하여 보상금액을 산출했고, 외국 송전선로 인근 보상범위만 들어 토지주에게 지급하는 재산적 보상범위는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송변전선설비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에 위헌청구를 할 정도로 재산권 침해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보상체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중화 및 대안노선으로 경과지 변경에 대한 한전과 주민대책위의 입장차도 여전하다. 새만금지방환경청은 2010년 345kV 군산-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에서 ‘명품 새만금개발 예상지역, 송전선로 통과 인근 주거지역 및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은 경관·전자파·철새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지중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 [농성장 주민들] "어떻게 장만한 땅인데…그 위에 철탑이라니"
“하루 내내 논일 해서 손에 쥔 돈이 쌀 한 되 값인데, 그 돈 모아서 장만한 땅이여. 근데 그 땅에 철탑을 박겠다니….” 농삿길 막는 철탑 공사를 하려거든 밟고 지나가라며 공사 트럭 아래 드러누웠던 김종기(80) 할아버지의 말이다. 한전의 새벽 공사로 피가 마른다는 하소연이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몇 년 살았는디, 일 년 새경이 쌀 두 짝이여. 지금 같으면 사나흘 일당인디.” 수몰민 보상비에 그 돈을 보태 늘리고 키워온 땅. 여든 아홉, 농성장의 최고령 조영식 할아버지는 지금도 당당한 농사꾼이다. 모판 떼고 심고, 거두는 것이야 젊은 손 빌어서 하지만 물 대고 약 치고 하는 일은 아직도 직접 한단다. 그래선지 아직도 몸이 단단하다.
“억울하기가 한도 끝도 없어라.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2년 가까이는 시래기국에 무밥을 먹었어. 그렇게 장만한 땅인데….” 평생을 군산 옥구에서 살았고, 그 땅에 묻히는 게 소원이라는 토박이 송금순(82) 할머니. 55세에 남편을 보내고 논은 친구 삼고 밭을 남편 삼아 눈물의 세월을 버텨왔다. 마을 이웃들이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 살기 좋고 정 많은 동네가 망하게 생겼다고 억울해 한다.
굳이 장유유서 따지지 않고도 형님 동생 하면서 살아 온 할매, 할아버지들이 건장한 용역들에게 당한 수모는 큰 상처다. 그리고 날아온 것은 25명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고발에 따른 소환장이다.
그들은 이 땅을 건강하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은 땅과 한 몸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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