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1 00:43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일반기사

[이색&공감] 고창교육지원청 '자서전 써드리기' 청소년 캠프

지역 6개교 중학생 23명 1박2일 참여 / 어른·아이세대 연결 관계 회복 중점 / 교과서 벗어나 근현대사 생생히 듣기도 / 전체 묶어 11월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

▲ 지난달 30일과 31일 고창군 해리면에서 고창교육지원청이 진행하는 독서 활동 ‘자서전 써드리기’캠프가 열렸다.

염천(炎天)이라했다. 불(火) 위에 또 불이 놓였으니, 뙤약볕도 이런 뙤약볕이 없다. 그나마 바람 한 점에 온 감각이 들썩이는 한여름 한낮, 글 나무 책의 숲을 지어가는 청소년들과 만났다. ‘자서전 써드리기’ 글쓰기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땀 한 방울과 바람 한 점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자서전 써드리기’는 올해 고창교육지원청(교육장 김국재)이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독서 활동 가운데 하나다. 고창지역 6개교 중학교에서 23명이 참여했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에 뒤질세라, 부모님과 조부모님 가운데 1명을 정해 차근차근 이야기(인터뷰)를 나누며 글로 옮겨오고 있던 터였다. 지난달 30일과 31일 고창군 해리면에서 열린 1박2일 캠프는 그동안 듣고 말하고 써온 과정의 중간점검이다. 함께 쓰는 벗들이 있으니 서로 의지도 되고 견주어보기도 하고, 일거양득이다.

 

△자서전 쓰기가 던지는 화두

 

쓰기는커녕 읽기에도 시간을 빼놓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쓰기도 그냥 쓰기가 아니라 ‘자서전 쓰기’다.

 

“엄밀히는 자서전 ‘써드리기’예요. 처음에는 참가 학생들에게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 분을 정해 인터뷰하고 그 분들의 삶을 정리해보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기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가족 구성원으로 정했다. 아직 전례가 없던 일, 진행하는 편에서도 따라 움직이는 편에서도 일의 무게를 더는 일은, 가까운 주변사람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고창교육지원청 김경완 장학사의 말이다. 그렇다면 하필 자서전이고 써드리기인가?

 

“세대를 잇는 징검돌이에요.”

 

자서전 써드리기 프로그램의 핵심은, 어른세대와 어린세대의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다. 일제감정기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고단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해서, 혹은 1980년 광주에 대해서 우리 청소년은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몇 줄의 글로 이해해야 한다. 몇 줄의 글, 그 행간에 숨은 피와 땀, 그 무수한 이야기는 또 어쩌란 말인가. ‘자서전’과 ‘써드리기’가 만난 것은 그 글과 글 사이에 감추어진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일이다.

 

△세대 잇고 관계 회복

 

세대를 이어주는 징검돌 말고 정말 중요하게 살펴야 할 맥락이 있다. 가족 안에서 찾는 글의 대상과 자연스러운 관계 복원이다.

 

“저는 아빠를 인터뷰해서 자서전을 써드리기로 했어요.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아빠도 바빠져서 밤늦게 들어오시고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이야기할 기회도 많이 줄어들고….”

 

3학년 소희는 굳이 바쁜 아빠의 생애를 글로 풀려는 까닭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늦게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말문이 터진 것은 물론, 답답할 때는 본인이 직접 글을 보태면서 거들고 나셨다. 거꾸로인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예요. 할아버지 고향은 북한 황해도 옹진이에요. 어렸을 때 가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낯선 고향이야기며 전쟁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는 글로 써드리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거예요.”

 

1학년인 향건이는 할아버지와 가까워서, 그동안 들었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고 싶어서 대상으로 정한 경우다. 글 대상과 관계의 밀도가 깊어지기는 매한가지.

 

△자서전과 써드리기가 만나 태어난 책과 문장

 

그동안 고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서전 써드리기’를 시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서출판 기역에서 나온 <마을책, 오늘은 학교 가는 날> 이다. 마을의 작은 공동체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서로 살맞대고 산 결과를 엮은 책이다. 지난 1970~80대 마을 아짐들(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를 듣고 옮겨 적은 작은 ‘자서전’이다. 또 글 쓰는 마을 <구현골이야기> 를 모아 책으로 엮은 사례도 있다.

 

두 세 달 남짓 달려온 고창의 자서전 써드리기는 어떤 상태일까. 아직 글 얼개를 짠 정도인 학생도,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정리를 시작한 학생도, 이미 전체 글(초고)을 마무리한 학생도 있었다.

 

‘검정고무신’이란 작은 제목을 단 지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 하면서도 부반장 친구가 생전 처음 보는 커피프리마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정신이 쏠려 침을 ‘꼴깍’ 삼키며 내가 맛 볼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우유 같기도 하고 분유 같기도 한 그 맛이란… 아주 환상적이었다. 환상적인 맛을 본 것도 잠시.’라며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소희는 딸의 눈으로 딸의 목소리로 아빠의 삶에 대해 ‘우리 아빠는 8월 15일 광복절에 뒷산에서 쩌렁쩌렁 울던 호랑이를 태몽으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이렇게 태어나실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빠. 아빠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고 시작했다.

 

△우리의 삶이 소중한 글나무 책숲이 되는 날

 

우리는 유년기부터 영웅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다. 전쟁의 누란에서 민족을 구한 영웅, 세상 모든 시름을 짊어지고 해결하려 노력한 위대한 성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랐다. 그들의 삶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글로 옮기며, 눈물과 웃음이 배 나오는 그 삶에서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이 청소년을 보면서 (영웅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자문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 전면에서, 늘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해주는 작은 영웅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영웅이,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이고, 동네 점방의 아짐이다. 작은도서관을 지키며 그림책 한 자락 들려주는 자원봉사 할머니이다. 영웅서사시 못지않은 ‘작은영웅 서사시’다.

 

이 분명한 사실을, ‘삶 글’을 쓰는 청소년이 다시 깨우쳐 주었다. 이 삶 글이 모여 11월 중에는 1권의 멋진 단행본으로 엮인다고 한다. 그 책을 시작으로 나아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소중한 글나무 책숲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 기다린다.

▲ 이대건 고창 책마을해리 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