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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서 혼자 밥먹는게 부담스럽죠" 전북 혁신도시 '비자발적 1인 가구' 풍경

농진청 직원 65%가 가족 동반 이주 못해 / 맞벌이·자녀 교육문제로 '나홀로' 거주

▲ 농촌진흥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전주로 내려온 박동구 재해대응과장이 지난 23일 혁신도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지난 23일 저녁 전주시 완산구 중동의 한 주점으로 50대 남성 3명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시끌벅적한 대학생 무리의 시선이 스쳐 갈 때쯤 문이 닫힌다.

 

“가족이랑 같이 살면 좋은데, 여건이 안되는데 어쩔수 없다아이가…”

 

소주가 제법 들어갈 때쯤 넥타이가 반쯤 풀린 박동구(52)씨는 경상도 사투리로 한숨을 내뱉었다.

 

20년 넘게 함께 살던 가족을 떠나 전주로 이사 온 지 2년. 동구씨는 경기도 수원에 있던 농촌진흥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한순간 비자발적 1인 가구가 됐다.

 

그의 동료 A씨와 B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래도 니는(박동구) 좀 낫다아이가. 3년만 있으면 행수님도 내려올텐테, 내는 택도 없다…”

 

소주를 한 잔 더 들이키며 A씨가 말했고, B씨는 조용히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대학생들이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기러기 아빠들인가 본데?”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장직을 맡고 있는 박동구씨는 지난 2014년 7월 전북혁신도시로 옮겨왔다.

 

당시 동구씨의 손에는 우선분양권이 쥐어져 있었지만 수원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내, 군대 간 아들, 수도권 내 대학생 딸은 우선분양권이 매력적인 보상책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현재는 은행 이자만 한 달에 40만원씩을 갚아가며 동구씨 혼자 아파트에 입주해 살고있다.

 

그러다 보니 2주에 한 번은 주말을 이용해 수원으로 올라가 가족들을 겨우 만나는데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은 일이 바빠 간신히 휴대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다.

 

혼자 사는게 썰렁하지만 그래도 3년 뒤면 아내가 직장을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온다니 약간의 희망을 품는다.

 

지난 24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중동 농촌진흥청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 동구씨를 만났다.

 

고향이 경남 합천인 동구씨는 어머니가 직접 담가 만든 된장을 보여주며 된장찌개와 밥을 직접 요리하고 식사를 마쳤다.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보통 열흘중 7~8일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때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제 직원중 약 35%는 가족이 모두 전주로 내려왔고, 나머지 65%는 금요일에 본가로 올라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새벽에 내려오는 ‘나홀로 아빠·엄마’라고 한다.

 

자녀들의 교육 여건 때문에 이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맞벌이 부부들의 경우 전주에 내려오면 새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 문제가 녹록지 않은 점도 가족동반 이주를 하지 못하는 큰 이유다.

 

동구씨는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음식점에서 1인분을 주문해 혼자 먹는 것에 대한 시선이 부담스럽다”면서 “아직 혁신도시 생활권이 완벽히 조성되지 못한 것은 물론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떨치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매주 금요일 이른 저녁의 혁신도시는 직원들을 본가로 태워다 줄 전세버스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한 달에 10만원이면 4번을 각 행선지로 왕복할 수 있는데, 그 곳은 동구씨와 같은 사람들로 연신 북적거린다.

 

전북대학교 이상록 교수(사회복지학)는 “혁신도시 시대를 맞아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풍경”이라며 “교육과 일자리 문제 등 가족들이 함께 이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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