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부사관학교 이색 퇴임식 / 조리원 김건희씨 전원 환송 / "모친 간병 위해…그동안 감사"
“육군부사관학교 조리병들의 도움으로 중·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방송통신대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비록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를 했지만 퇴임식날 김채식 원사님께서 써주신 ‘돌아보니 감사뿐입니다’란 글귀가 가슴속 깊게 떠오릅니다.”
지난달 31일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특별한 퇴임식이 열렸다. 성대한 퇴임식 주인공은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아닌 이곳에서 18년 넘게 조리원으로 일했던 김건희 씨(52)였다. 김씨의 퇴임식에는 류성식 학교장(소장)을 비롯해 전체 간부와 병사, 군악대까지 동원됐다. 퇴임식장에서 정문 앞까지 가득 메운 병사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김씨가 육군부사관학교와 인연을 맺은 건 1998년 8월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과 힘겨운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였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동생, 조카 같던 병사들이 먹는 음식에는 김씨의 정성이 듬뿍 담겼다. 그런 김씨의 모습에 따뜻함을 느낀 병사와 간부들은 김씨를 ‘이모’라고 불렀다.
“가진 것 없고 배움도 짧은 저에게 병사와 간부들은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그에게 병사들은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병사들의 가르침을 받아 2002년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대입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2007년에는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때 한식조리기능사, 미용기능사, 한자 3급, 동화구연지도사, 방과후아동지도사과정 수료 등 취득한 자격증만 수두룩하다.
그에게 최근 큰 시련이 다가왔다. 함께 살던 어머니의 지병이 심해져 간병의 손길이 필요하게 됐다. 딸이 없을 땐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어머니의 깊어가는 병환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부사관학교와 병원을 오가며 간병을 하던 김씨는 병환이 더해가는 어머니의 곁을 지키기 위해 삶의 전부인 부사관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김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부사관학교는 어머니의 곁에서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봐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24시간 어머니 병 간호를 택했다.
학교장을 비롯한 부사관학교 간부와 장병들은 어쩔수 없이 따뜻했던 정든 이모를 성대한 퇴임식을 통해 떠나보내기로 했다.
학교측은 “병사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져온 이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퇴임식을 치렀다”며 “어디에 계시든 장병과 간부들은 이모의 감사함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장 생활을 위해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면서 저녁이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을 계획이다”며 “부사관학교에서 생활하며 반군인이 되었고, 그런 정신을 살려 도전하며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