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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소양면 일원, 웅치전투 역사적 현장이었다”

군, 매장문화재조사 결과 발표
봉화터 등 관련 실증자료 첫 확인

웅치전투 추정 진지터 전경.
웅치전투 추정 진지터 전경.

완주 소양면 일원이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방어한 웅치전투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완주군은 전북도와 함께 웅치전적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매장문화재조사 결과, 성황당 터와 추정진지 터, 봉수 터의 위치와 규모가 확인됐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성황당 터는 평면형태 타원형으로 규모는 길이 14.0×27.5m, 최대높이 6m가 잔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석재들로 자연암반에 덧대어 조성됐다. 내부에서는 조선시대 자기편도 출토됐다.

봉화터는 해발고도 500m 건지봉 봉우리의 정상부에서 확인됐으며 장축길이 7.5m, 단축길이 6.5m 내외의 사각형이다.

내부에서는 타날된 격자무늬, 승선문 등이 문양된 회청색경질토기가 수습됐다. 추정진지 터는 주변에 산재한 석재를 활용하여 ‘ㄷ’자형으로 쌓아올린 유구로 인위적으로 조성됐다.

이를 보면 완주 소양면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교통과 통신의 거점지였고 진안지역 뿐만 아니라 완주 지역에도 웅치전투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증자료가 잘 남아 있음을 확인한 첫 사례로서 그 의미가 크다.

웅치전투는 1592년(선조 25년) 7월 8일 조선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공략하기 위해 전주부성으로 침략해오는 왜군에 맞서 진안에서 완주로 넘어가는 웅치 일대에서 이틀 동안 사투를 벌인 역사적 사건이다.

웅치전투는 조선군이 거의 전멸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왜군의 주력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고 이후 소양 구진벌과 안덕원에서 왜군을 격퇴해 왜군이 전주부성에 당도하지 못하고 철수하게 함으로써 호남방어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해 9월 완주군이 개최한 역사재조명 학술대회에서 향후 문화재 지정 및 정비의 중점과제로 제시되었던 실증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수행했다. 올해 상반기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 51 일원의 성황당 터, 추정진지 터, 봉수 터 3곳을 대상으로 지난 8월부터 진행됐다.

완주군은 이번 조사를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웅치·이치전투기념사업회와 함께 오는 18일 오전 10시 완주군 문예회관에서 ‘2018년 완주 웅치전적지 매장문화재 조사성과 및 향후과제’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개최한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완주군 일대에서 펼쳐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보다 명확하게 밝혀 승리의 ‘웅치대첩’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완주정신 정립의 주요 키워드로 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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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st@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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