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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한마디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얼마 전 사무실에 작은 소포가 하나 배달됐다. ‘사랑으로 가는 길’ 이라는 제목의 작은 시집이었다. 책에 적힌 시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여행에 빠졌다.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시는 고3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자작 시집이었다. 쉰 중반을 넘길 때 까지 뭐가 그리 바빴는지 시 한편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타향살이에 지친 내게 선생님의 시 한편 한편은 위안과 함께 인생을 반추해보는 가르침을 주셨다. 아마 누구에게나 학창시절 인생의 향도가 되었던 은사 한 두 분은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전자 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를 창업해 손꼽히는 거부가 된 중국의 마윈회장은 학창시절 지리선생님의 한마디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리선생님이 항저우 시후(西湖)주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알려줬던 경험담을 들려주며 지리공부뿐만 아니라 영어도 열심히 하라는 말을 귀담아 듣고 영어공부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자본도 인맥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한 마윈이 자신의 집에서 탄생시킨 ‘알리바바닷컴’으로 미국와 영국 등 해외 곳곳을 누비며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자를 유치한 것도 영어를 습득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그는 “가슴 한편에 일말의 실현 가능성 있는 이상을 품고 있다면 쉬지 말고 노력하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목포상업학교 시절 3학년 담임선생님의 한마디가 일생의 가르침이 되었다고 한다.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고수한다고 방법에서 유연하지 못하면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방법에서는 유연한 이른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그때 배웠다고 회고했다.

시집을 보내 주신 선생님도 내게는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몇 달 앞두고 방황하던 내게 전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엄한 체벌을 하셨다. 반장을 맡았던 내게 가지셨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셨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벌써 알고 계셨다. “선생님께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언제든 더 엄하게 혼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셨던 그 순간이 그나마 지금 조금이라도 사람구실하고 살 수 있게 해주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여 석삼년을 기다려도 철쭉꽃 피면 오겠노라하던 언덕엔 올해도 환한 봄빛이 웃고 있다오/서울은 멀고 세월은 참 빠르지요 빠른 세월을 원망한들 하루해가 쉬엄쉬엄 갈 리 있겠소만/축축한 눈물의 별사(別辭)도 없이 서울행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고 어둠이 묻어나는 차창에 얼굴을 기대며 돌아오는 언덕 위로 별들이 뜨더이다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지요/철쭉꽃이 지고 세월도 지고나면 그대와 나 무엇이 남으리오 먼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돌아보면 풀잎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뿐(세월이 지고나면 오삼표 작)

이 시를 읽으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신 선생님의 애틋한 제자사랑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제멋대로의 해석을 하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에 죄송할 따름이었다.

“시의 궁극의 목표는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있다고들 하거니와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꿈꾸는 것이 ‘시의 권리이자 책무다’라고 하는 등단시인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는 내게도 이러한 시적표현이 들어갔는가 반성해본다” 라는 선생님의 시집 발제문은 갈수록 나태해지려는 나 자신에게 다시 주시는 엄한 가르침으로 이 가을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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