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급격한 IT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많이 바꾸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바꾸고 있는 것은 유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유통 구조의 변화는 한두 군데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마다 핸드폰이 들려지면서 손안의 소비,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유통의 판도를 온라인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워 장을 보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해 주는 마켓도 있고, 친정 언니가 농사지어 보낸 듯 좋은 제품을 정해진 날짜에 배송해 주는 텃밭도 있다.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판매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전통적인 유통 구조는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적어도 서너 번의 단계를 거친다. 도매업자와 도도매업자, 소매업자 등 판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소비자에게는 노출되지 않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어서 소비자는 한정된 물품만 구매할 수 있었다. 어떤 제품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떻게 우리 집에 오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가격도 판매업자들이 정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빠르게 정보가 공유되면서 전통적인 유통 시스템은 의미가 무색해졌다. 누구나 유통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전통적인 유통 구조는 그 수명을 다했다. 한두 개 사이트가 아닌 여러 사이트에서 내가 살 물건을 비교해 보고, 각종 혜택을 더해서 판매자가 아닌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 물품을 살 수 있는 직구, 가격 비교에서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온라인·모바일 쇼핑, 중간 판매자가 필요 없는 직거래, 각종 커뮤니티에서 질 좋은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공동구매, 소비자가 판매도 겸할 수 있는 온라인 오픈 마켓 등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판매 채널들이 활성화되면서 유통 단계는 축소되었으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져 생산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 제품과 유통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가전제품도 대형 가전보다는 쓰다가 버리는 스몰 가전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식재료도 미니 소포장이 각광받고 있다. 직접 고급식당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만끽할 수 있는 맛집 재료들이나 레토르트 식품이 배송되는 것이 유행이고,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맛집 요리를 그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이 제품 간접경험에서 배송까지 1대1로 이뤄지는 IT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러한 유통 구조의 변화는 사실 개인주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하게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유난히 빨리 유통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업무를 볼 수 있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지구촌 저 너머의 일까지 알 수 있는 빠른 정보의 유입은 협업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개인 사회를 앞당겼다. 식당에서 남이 먹는 메뉴를 살펴보는 촌스러움, 옆집에 새로 들여온 가구를 구경하는 재미, 남의 집 자식자랑에 샘솟는 질투 이런 것들은 사라져 간다. 그 자리를 요리 재료를 레시피대로 파는 온라인 유통업체, 취향까지 컨설팅하는 가구업체, 대치동 유명 강사의 인터넷 강의 등이 채웠다. 유통의 변화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불러온 것인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유통의 변화를 불러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는 이제 혼자 살기에 여념이 없는 개인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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