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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76)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2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이 좌평 성충, 흥수, 연임자 등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달 전에 김창준이 당왕 이치한테서 당군의 파병을 통보받았어. 지금은 파병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소정방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각 주(州)에서 제대로 군사나 물품이 준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관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이번 파병은 제 나라 일도 아닌 데다 겨우 미랑에게 뇌물을 써서 이루어진 일이라 그렇습니다.”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미랑은 현(現) 당왕(唐王)의 부친 이세연의 애첩이었을 때의 이름이다. 그 미랑이 이세연의 총애를 받아서 무미(武媚)라는 호를 받았는데 본래 이름이 무조(武照)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 조정은 당(唐) 왕실의 패륜을 경멸하여 죽은 아비의 소실을 왕비로 삼은 당왕(唐王) 이치는 물론 무후 미랑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말했다.

“이찬 김창준이 장안성에 머물면서 계속 미랑에게 뇌물을 바친다니 성과가 있을 것이오.”

“그럴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미랑이 뇌물 몇만량에 대군(大軍)을 동원할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제 욕심만 차리는 계집이라고 해도 일국의 왕비가 된 괴물입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설령 당왕 이치는 그냥 넘긴다고 해도 대신들에게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옳다.”

의자가 입술 끝을 올리고 물었다.

“그 명분은 신라, 백제, 고구려까지의 병합이겠지?”

“그렇습니다. 신라는 이미 당의 관복을 입고 당의 속령으로 자처하고 있으니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에는 속국으로 삼겠다는 명분을 세울 것입니다.”

“결국 김춘추의 당과 일심동체론이 당의 대신들에게도 먹히겠지.”

“신라의 위협이 당의 위협으로 될 것입니다.”

“김춘추가 필사적으로 당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야.”

눈을 가늘게 뜬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제일 두려운 상황이 무엇인지 아느냐?”

의자가 묻자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얼른 대답하는 대신은 없다. 의자의 시선이 내신좌평 연임자에게 옮겨졌다.

“내신좌평이 말해보라.”

“당의 대군이 예상 외로 많이 출정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몇십만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대백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나섰다.

“당의 대군이 빨리 오는 경우입니까?”

“아니다.”

의자의 시선이 성충에게로 옮겨졌다.

“병관좌평이 말해보라.”

“이치가 죽고 미랑이 집권하는 것 아닙니까?”

“옳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친 의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은 두 번째로 두려운 상황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왕.”

“그럼 무후(武后)가 당왕(唐王)이 되겠구나.”

“미랑은 왕비를 퇴위시키려고 제가 낳은 딸을 질식시켜 죽인 요물입니다.”

“과연.”

의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 딸을 질식시켜 죽인 미랑은 그 죄를 왕비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랑은 왕비가 되었다.

그때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두려운 상황은 김춘추와 미랑이 결탁하는 것이다.”

세쌍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나이들었지만 지금도 수려한 용모에 언변이 뛰어났고 재능은 따를 자가 없다. 미랑이 그자를 만난다면 이 세상은 김춘추가 장악하게 될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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