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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7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3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어딜 보세요?"

뒤에서 미사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옷자락이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저녁 무렵, 성의 5층 누각에 선 계백이 앞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가온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섰다. 바람이 미사코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고 긴 머리칼 몇 가닥이 얼굴을 휘감았다. 미사코의 체취가 맡아졌다. 향기가 섞인 살 냄새다. 계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사코가 같은 방향에 시선을 준 채로 다시 말했다.

"노을은 볼 때마다 달라요. 얼핏 보면 똑같은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요."

"…"

"냄새도, 파도도, 날씨도…"

계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녁노을이 붉은 비단을 덮은 것처럼 바다를 물들였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쪽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바다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미사코는 잘못 물었다. 어딜 보느냐고 묻지 말고 뭘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토요야마성, 미사코가 따라와서 닷새째 머물고 있다. 토요야마성에는 소실이 셋 있다. 아야메, 하루에, 다나에다. 그중 다나에와 하루에는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르다. 이번에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서 바다냄새가 맡아졌다. 토요야마성에서 서쪽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미사코, 저 바다 건너편에 전운(戰雲)이 덮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보입니다."

미사코가 바로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시늉을 했다. 계백이 더 붉어진 수평선 위쪽 하늘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이 펼쳐져 있다."

미사코가 숨을 죽였다. 곧 미사코는 미사코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사코는 엄연히 소영주(小領主)인 것이다. 미사코성(城)을 중심으로 옛 후쿠토니의 영지를 통치해야만 한다. 계백의 목소리가 누각 위에 울렸다.

"난 조만간 저곳으로 돌아간다. 미사코."

"알고 있습니다. 주군."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바짝 붙어섰다. 계백의 측실 중에 미사코만이 이런 행동을 한다.

"미사코, 네가 중심이 되어라."

"예. 주군."

"내 자식들을 낳으면 네가 다 뒤를 봐주도록 해라."

"주군이 옆에 계셔야지요."

"있을 것이다."

"꼭 돌아오신다고 약속해주세요."

"돌아오마."

"하루에, 다나에님은 곧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야메님도 잉태를 했습니까?"

"했을 것이다."

"제가 낳는 아들이 적자가 됩니까?"

"내가 백제방과 이곳에 남는 중신(重臣)에게 말해놓겠다. 네 아들이 적자다."

"주군."

미사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미사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코가 계백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말씀 하시려고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다른 소실들 인사도 받아야 할 것 아니냐?"

미사코를 왜국 내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미사코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이곳 계백 가문은 걱정하지 마세요. 뿌리는 단단히 굳혀놓을 테니까요."

"다른 백제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너희들의 바탕이 든든하다."

"좋은 밭(田)입니다."

미사코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바다를 건너가실 때는 뵙지 못하겠군요."

"언젠가는 돌아올 테니까."

이제는 계백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왜국이다. 뒤쪽 청에는 이미 향초를 여러 개 켜놓아서 환해져 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곳, 왜국은 내 고향이나 같다. 내 자식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뿌리를 뻗고 열매를 맺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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