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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 3·1운동 1만 1000명 시위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3월 1일. 군산시 옥구읍 개정면의 기독교회 부속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과 김수영, 박연세는 같은 기독교회 부속 여학교 교사 고석주, 기독교 병원 사무원 양기준, 유한종, 기독교도 김성은, 유희순 등 영명학교에 모여 군산 장날이 열리는 3월 6일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두열은 독립선언서 100장을 영명학교 학생 양기철, 전세종 등 11명에게 배부, 등사를 부탁했고 학생들은 3월 1일부터 3월 4일까지 영명학교 안에서 등사판으로 선언서 7000여 장을 복사했다. 그러던 중 이러한 계획을 눈치 챈 일본경찰은 이두열, 김수영, 박연세 등 관련 교사 5명을 군산경찰서에 구속했다. 하지만 독립을 열망하는 도민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3월 5일 오전 8시 군산경찰서 앞에서 양기준, 유한종 등 100여명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전북에서 3.1운동에 참여한 도민들이 1만여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6일 ‘3·1운동 데이터베이스(DB)를 공개하고 이 같이 밝혔다.

DB에 따르면 전북에서는 총 44번의 3·1운동 시위 또는 집회가 열렸으며 최소 8080명 최대 1만 1115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전주 4번, 익산 8번, 군산·정읍·남원 각각 2번, 임실 11번, 진안·김제 3번, 무주·부안·고창 각각 1번 등의 시위가 있었다.

이 중 4번의 시위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국사편찬위가 추정한 사망자는 12명이다.

국사편찬위 관계자는 “전국 각지에서, 국외에서 일어난 3·1운동은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에 100주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 전체와 세부를 아우르는 총체적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3년에 걸쳐 3·1운동 관련 기초 정보를 종합하고 GIS(지리정보체계)와 연동해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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