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 장르, 손바닥 동시 탄생
딸아이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집 앞 국숫집에 갔다. 양은그릇에 가득 담긴 국수를 사람들이 소리 내며 먹고 있다. 유강희 시인의 짧은 동시 ‘국수 가족’이 떠오른다. “호로로호로록/후룩후루루룩/뾰록뾰로로뾱,” 국수 먹는 소리와 모습을 이보다 더 실감나고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면발을 맛있게 마시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시집 이외에도 여러 권의 동시집을 낸 유강희 시인이 최근에 <손바닥 동시> 란 새로운 형식의 동시집을 펴냈다. 시인이 10여 년 전, 바닷가를 거닐다가 손바닥에 짧은 시를 쓰면서 ‘손바닥 동시’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손바닥 동시 형식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글자 수가 시조의 앞 첫 구만으로 짜인 3행의 시다. 이번 동시집에는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손바닥>
이번 동시집에선 천둥이 치거나 모기가 물어도 눈만 꿈벅이는 소, 오늘 방학을 한다면 야호, 소리를 지른다는 하느님, 뾰 한 글자로 생명의 설렘을 노래한 봄, 누군가 놀래키면 멈출 것만 같은 뻐꾸기 딸꾹질, 컵라면 뚜껑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람, 참새도 박새도 와서 먹는 까치밥, 개미가족 소풍에 꽃 양산이 되어주는 살구꽃 등 천진한 동심의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손바닥 동시> 엔 특히 시인이 강조해 온 ‘생명심’으로 우리 주변의 사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고 진솔하게 담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래서일까. 그의 동시를 읽다 보면 순수한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고, 진하게 농축시킨 간결한 언어에 마음의 발길이 멈추곤 한다. 그런가 하면 “웅덩이가/날개를/편다”(‘차가 지나갔다’)에선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손바닥>
스마트폰에만 빠져 사는 딸아이에게 손바닥 동시 몇 편을 읽어주고 제목을 맞혀보라 했다. 딸아이는 깔깔대며 웃기부터 했다. 둘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범해 보이는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걸 짧은 몇 마디 언어로 표현한 동시가 딸아이는 퍽 신기했던가 보다. 우리는 그날 서로 제목을 묻고 답하며 한바탕 ‘손바닥 동시’놀이에 푹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일 모레가 어린이날이다. 각종 영상 매체와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누구나 쉽게 쓰고 즐길 수 있는 유강희 시인의 <손바닥 동시> 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 손바닥>
* 김헌수 시인은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삼례터미널’로 등단했다.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북작가회의 회원, 동시창작 모임 ‘동시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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