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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최초 다문화결혼이주여성 마을이장, 조이(Joy) 씨

조이 이장
조이 이장

“인생은 계획된 길로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꿈이 뭐냐 물으면 명확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원칙이 중요한 거 같아요. 이장일도 그렇게 해 보려고요. 주민 다수를 위해 합리적으로 고민하면서 제대로 일하고 싶어요.”

새로 시작한 이장 일에 대해 또박또박 포부를 밝히는 조이(33·무주군 설천면 남청마을 이장)씨는 매우 당찼다.

필리핀 태생의 조이는 무주군 최초의 다문화이주여성 출신 이장이다.

이장은 처음이지만 이웃마을(무주읍 전도마을) 체험센터의 사무장 경력만 5년이다. 또 다문화이해강사(무주군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한 지도 벌써 9년째니 ‘똑’ 소리 난다는 말이 정말 ‘딱’인 사람이다.

남편을 만나 부모님 반대를 뒤로하고 대학공부도 내려놓은 채 택했던 한국살이가 올해로 13년째.

조이 이장은 “다문화 이장이라 쏠리는 지금의 관심이 나중엔 일 잘해서 인정받는 이장이고 싶다”고 말했다.

조이 씨가 68가구 121여 명이 사는 남청마을 이장이 된 건 올해 1월이다. 얼마 안 됐지만 벌써 마을회관 지붕공사와 마을 어귀 숲 정리를 끝냈다. 어르신들께 운동기구를 놔드리고 자주 막히는 마을 도랑(사방댐)까지 정리하고 싶은 게 앞으로의 목표이다.

낯선 땅에 정착한 조이는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간의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처음 왔을 땐 한국말을 전혀 못해 답답하고 우울했다. 정말이지 살려고 배웠다”면서 “1년간을 한국 사람만 만나고 한국 드라마만 봤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경로당으로, 시장으로, 교회로, 정말 열심히 다니며 말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랬더니 눈이 떠지고 귀가 들리고 말문이 열렸다”고 부연했다.

2009년부터는 다문화지원센터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했고 바로 이듬해 전라북도 한국말대회에 출전해 50명 중 2등을 했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의 일이다.

기죽어 살던 조이는 살맛이 났고 남편은 그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국적도 따냈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이 이장은 “타국에 와서 살아보니 당장 현실의 벽은 언어와 문화였다. 저는 엄마니까 더 악착같이 공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3살 딸, 11살, 8살, 8개월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이고 싶다는 조이는 여전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필리핀에선 수도 마닐라에서 대학을 다니며 심리학까지 전공하다 왔지만 한국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고 시작이었다. 그래서 검정고시로 초등과정을 마치고 중등과정과 워드 자격 취득을 준비 중이다. 배우고 일하며 아이들 키우려니 필요한 기동력을 채우기 위해 운전면허도 땄다.

대학까지 마쳐 결혼이주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복지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마을과 결혼이주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1인 방송 유튜버로도 활약(구독자 1000여 명)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마을 일 보랴 어머님들 챙기랴 분주하던 조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환한 희망을 꽃피우고 있었다.

김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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