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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여순까지⋯ 전북에서 만나는 '안중근의 길'

김제·군산·전주 등 전북에 남겨진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역사적 현장
단순 관광지 넘어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교육의 장으로 각광, 지자체 차원의 고민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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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아이랑마을 하얼빈역./사진=이준서 기자

최근 안중근 의사를 다룬 뮤지컬과 영화가 잇따라 공연되면서 그의 삶과 정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조명된 ‘하얼빈’과 ‘여순 감옥’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그의 발자취를 꼭 그 배경인 중국 만주로 떠나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북에도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되새길 수 있는 상징적 공간들이 있다. 김제 내촌아리랑마을, 군산 해망동 근대미술관 별관, 그리고 전주 안중근장군기념관들이 그곳으로 관광과 역사교육 인프라 연계등 지자체 차원의 고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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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에 조성된 안중근 의거 재현 동상./사진=이준서 기자.

△하얼빈역’ 그날의 기억을 재현하다

지난 27일 김제시 죽산면 내촌아리랑마을.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주 무대이기도 한 이곳에는 1910년대 하얼빈역을 60% 축소 재현한 역사(驛舍)가 자리하고 있다. 역 플랫폼에는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을 재현한 동상이 놓여있고, 그의 손에는 결연함이,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당시의 증기기관차 모형이 긴박했던 그날의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역사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와 그의 의거 과정이 정교하게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을 그날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역사 광장을 지나면 이민자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갈대와 나무로 만든 집들은 일제 수탈에 못 이겨 타향으로 떠난 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갈대집의 허술함과 목조 가옥의 초라함은 구한말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웅변하는 듯 했다.

마을 관계자는 “이곳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한 곳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잊히지 않도록 많은 이들이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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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근대미술관 여순감옥 전시실./사진=이준서 기자.

△여순감옥, 그날의 고독과 신념

군산 해망동 근대미술관은 일제강점기 경제적 수탈을 상징하는 옛 18은행 건물을 복원해 조성됐다.

당시 18은행은 일본 지주들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줬고 이들은 그 돈을 다시 조선인들에게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일삼았다. 결국 많은 조선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다.

이 건물은 그런 수탈의 상징이었고, 현재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중국 여순 감옥을 재현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1층에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전시돼 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라는 글귀가 깊은 울림을 준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 일제의 불법적인 사형 선고에 항소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것이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로 비칠까 우려해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2층으로 올라서면 여순 감옥이 재현돼 있다. 비좁은 방과 차가운 침상, 그 위에 놓인 작은 책상.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나라의 미래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10년 3월 26일 32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됐다.

군산이 안중근 의사의 여순 감옥을 재현한 이유는 분명하다. 군산시 관계자는 "군산은 근대 역사교육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이곳을 조성했다"며 "방문객들에게 단순히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신념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상징적 공간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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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안중근장군기념관 전시실 모습./사진=이준서 기자.

△안중근장군기념관,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곳

전주시 덕진구 전동 한옥마을 입구에 위치한 안중근장군기념관은 비수도권 유일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중근 의사의 ‘동포에게 고함’과 ‘최후의 유언’이 눈에 들어온다. “학문과 기술을 익혀 실력을 키워 자유 독립에 기여하라”는 그의 당부는 현재에도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의 연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그의 유묵들 중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는 글귀는 그의 강직한 신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그의 손도장 모형을 통해 ‘단지동맹’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왼손 약지를 자르고 흘린 피로 '대한독립'을 새긴 이야기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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